[사설] '채 상병 특검' 거부권 행사하지 않는 게 법치 훼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에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 2일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거부권 행사에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정권 몰락’ ‘대국민 전쟁 선포’ 등 험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작년 7월 채 상병이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현장에 투입돼 순직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고,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야당이 특검으로 몰아가는 것은 법리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수사의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거나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없을 때 실시하는 게 특검이다. 채 상병 수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외압을, 경찰이 과실 치사 부분을 각각 수사 중이다. 공수처 설립을 무리하게 강행한 민주당이 정작 그 수사를 못 믿겠다며 특검에 맡기자는 것부터 자가당착이요, 법치 훼손이다.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기 전 특검을 도입한 전례가 거의 없고, 독립 기구인 공수처와 특검 설립 취지가 비슷한 점에 비춰봐도 야당의 주장은 억지다. 독소 조항도 적지 않다. 고발 당사자인 민주당만 특검 선택 권한을 갖도록 한 것은 대통령의 공무원 임명 권한을 침해할 위헌 소지가 있고, 삼권분립 정신에도 어긋난다. 특검의 수시 언론 브리핑도 정치적 악용 소지가 있다. 그간 특검은 대부분 여야 합의로 도입했는데, 이번엔 이 과정을 건너뛴 것 자체가 거대 야당의 권한 남용, 폭주다. 그런데도 야당 대표는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고 선동하고 있다. 이른바 ‘정서법’에 기대어 복잡한 법리에 어두운 일반인을 현혹하려는 저의다.

오히려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하는 게 위법적이고 직무유기다. 거부권 행사가 대통령 탄핵 사유라고 주장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헌법엔 탄핵소추 사유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돼 있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거부권 행사가 대체 어떤 헌법과 법률을 어겼다는 건가. 수사를 지연시킨 공수처의 책임도 크다. 뒤늦게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한 점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윤 대통령이 “(수사 결과가) 납득이 안 된다고 하면 제가 먼저 특검하자고 하겠다”고 한 만큼 야당도 지켜보는 게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