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집 조합장 준다고?" 무심코 동의했는데…'화들짝' [집코노미]

흥청망청

재개발·재건축 천태만상
재개발·재건축에서 돈이 줄줄 새는 이유

▶전형진 기자
재개발·재건축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짚어보죠. 먼저 이 사업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 옆 자리 사람이 좋든싫든 우리는 한 배를 탔어요. 운명의 공동체입니다. 목적지인 보물섬까지 무사하게, 빠르게 가는 것 말곤 목표가 없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서로 선장을 하겠다고 싸우죠. 나 혼자 싸움판에 안 끼고 바다 감상하며 풍류를 즐길 수 있을까요? 이상한 데로 가는 그 배에 나도 타고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말리든 같이 싸우든 정리를 해야 다시 항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장님이 어딘가 조금 모자라 보여도, 혹시 뭘 좀 해먹어도 그냥 눈 감아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선장 하려고 싸우는 이유죠.
정비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를 분류한 표입니다. 합계를 보시면 뇌물수수, 뇌물공여, 배임, 횡령이 52%입니다. 돈과 관련된 게 정비사업 사건사고의 절반이라는 의미죠.
이런 사례도 있습니다. 흥부건설 입장에선 당연히 공사비 올리고 싶겠죠. 공사비는 건설사가 조합으로부터 받는 돈이니까요. 하지만 조합에서 도장을 찍어줘야 한단 말이죠. 그래서 놀부 조합장을 찾아가서 주머니에 1냥을 슥 넣어드립니다. 놀부가 "뭐 이것 참" 하면서 공사비를 뻥튀기 해줬다가 걸렸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하다 보니 흥부도 하청업체에서 돈을 받았던 것이죠. 심지어 2냥을 받아서 자신이 1냥을 갖고 나머지 1냥을 놀부에게 줬던 것입니다. 사이 좋게 처벌을 받았습니다.
일감 몰아주기도 기상천외합니다. 예컨대 놀부 조합장이 철거업체를 흥부네 친구들로 선정하고 싶어도 그냥 지정할 순 없습니다. 일정 금액 이상의 계약은 무조건 입찰에 부쳐야 한다는 기준이 있기 때문이죠. 업체끼리 경쟁을 시켜야 합니다. 흥부네가 선정 안 될 수도 있겠죠.
그래서 계약을 쪼개버립니다. 예를 들어서 1냥이 넘을 때부턴 입찰을 해야 하고 철거공사는 1.5냥짜리라면, 이 공사를 0.5냥짜리 3개로 나누는 것이죠. 창문 철거, 문짝 철거, 건물 철거를 모두 나눠서 흥부에게 주는 겁니다. 각 공사가 1냥이 안 넘으니까 누군가를 지정해서 계약할 수 있는 거죠.
조합의 재산에 영향을 끼치는 의사결정은 총회를 통해서 결정됩니다. 조합원들이 투표를 하죠. 그런데 수백, 수천명이 모이는 행사다 보니 자주 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동의를 구해야 하는 사안들을 원기옥처럼 좀 모아뒀다가 총회를 열 때 한꺼번에 상정합니다. 문제는 안건이 여러 가지 쌓이다 보니 조합원들도 내용을 제대로 보지 않고 동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세히 보면 '남는 아파트 1채를 놀부에게 준다'고 써있는데 말이죠.

기상천외한 비리는 조합 미청산이 최고입니다. 재개발·재건축이 다 끝나서 새 아파트가 준공됐고, 이전고시로 땅 정리까지 끝났는데 알고 봤더니 조합이 청산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조합이 존속하고 있다면 당연히 조합장 자리도 살아 있겠죠. 조합장 자리가 살아 있으면 월급도 계속 나갑니다. 원래 해산하면서 남은 돈을 조합원들에게 나눠줘야 하는데 조합을 남겨두고 평생직장으로 월급 받고 사는 겁니다. 다 여러분 돈입니다. 사업이 끝난 지 10년이 넘도록 몰래 운영되는 조합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깨어 있는 조합장님은 혼자 몰래 소송도 합니다. 예를 들면 구청과 소송을 붙어서 받아낸 돈으로 차도 뽑고, 옷도 사고 하는 거죠.
조합의 운영엔 수많은 회의가 불가피한데요. 이 회의는 참석 수당을 지급하는 게 원칙입니다. 다만 조합장이나 이사 같은 상근임원들은 배제입니다. 하지만 모르는 척 지급하는 경우들도 있죠.

또 조합은 현금으로 돈을 보유하거나 지급하면 안 됩니다. 사용처가 불투명해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카드를 안 쓰려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간이영수증 한 장 받아서 사용 내역을 아무렇게나 쓰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죠.
물론 모든 조합의 운영이 이렇게 불투명하고 수상한 건 아닙니다. 오늘은 극단적인 사례만 말씀드렸습니다. 재개발·재건축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는 부동산원, 서울시, 서대문구에서 잘 정리한 자료가 있습니다. 아래 링크의 집코노미 주민센터에 오셔서 Tip 게시판을 누르면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집코노미 주민센터
https://www.hankyung.com/jipconomy-house/

기획·진행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촬영 이재형·예수아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편집 예수아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