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착륙이냐, 불시착이냐…美경제 엔진 '이상징후' 감지됐다

탄탄하던 미국 경제, 엇갈린 지표 무슨 일이

美경제 이끈 '고용' 식어
고금리에도 견조했던 고용
4월 비농업 일자리 17.5만개
작년 10월 이후 최저 수준
실업률 3.9% 예상보다 높아

물가 안정? 이미 많이 올라
외식비가 집밥보다 4배 비싸
서민층은 물론 고소득층도
월마트 장보기 위해 줄 서
미국 뉴욕시에서 아동심리 상담소를 운영하는 줄리 애덤스는 최근 몇 주간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지 못했다. 주차장 입구부터 줄 선 차들 때문에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인근 다른 마트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애덤스는 “외식비부터 배달비까지 너무 올라 집밥을 해먹으려는 사람들이 코스트코 월마트 등 대형마트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골디락스(고성장 속 물가 안정) 국면에 접어드는 듯했던 미국 경제가 갈림길에 선 모양새다. 미국 증시는 연일 상승세고,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상향 조정되는 가운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3%대를 유지하고 있고, 소비심리와 고용 수치는 악화하는 추세다. 미국 경제가 연착륙과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 경계선에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주가는 급등, 성장률 전망치도 상향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최근 연이어 급등세를 보였다. 21일(현지시간) S&P500지수는 0.25%, 나스닥지수는 0.22% 오르며 각각 종가 기준 역대 최고치를 또 경신했다. 다우지수도 지난주 역사상 처음으로 4만 선을 돌파했다. 인플레이션 완화 기대감이 주요인이다.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 상승하며 3월(3.5%) 상승률을 밑돌았다.
지난 16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트레이더들이 ‘다우(DOW) 40,000’이라고 적힌 야구 모자를 쓰고 일하고 있다. 다우존스지수는 이날 사상 처음으로 장중 4만 선을 돌파했다. AFP연합뉴스
성장률 전망도 밝다. 애틀랜타연방은행의 국내총생산(GDP) 예측 모델인 GDP나우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 16일 기준으로 연율 3.6%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2.6%로 높여 잡았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에 대한 미국 중앙은행(Fed)의 경계감은 여전하다. 크리스토퍼 월러 Fed 이사는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Fed가 금리 인하에 나서려면 최소 3개월 정도 이어진 인플레이션 지표 둔화세를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 성장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올해 1분기 실질 성장률은 연율 기준 1.6%로 집계돼 시장 전망치(2.4%)를 한참 밑돌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다만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연은 총재는 16일 열린 웨인 경제개발위원회에서 “1분기 GDP 성장률은 둔화됐지만 더 많은 데이터가 나오면서 수정될 여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고용 악화, 소비심리도 위축

고금리에도 미국 경제가 버티고 있는 주된 요인으로는 강력한 노동시장이 거론돼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고용 수치가 악화하는 추세다. 미국 노동부가 집계한 지난달 비농업 부문 신규 일자리는 17만5000개로, 작년 10월(15만 개) 후 최저치였다. 같은 달 실업률도 3.9%로, 전문가 추정치(3.8%)보다 높았다.

고물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고용시장이 악화 조짐을 보이면서 소비심리도 위축되고 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달 소매 판매는 7052억달러로 전월과 비교해 변동이 없었다. 전월 대비 0.4% 증가를 예상한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수준이다. 지난 10일 미시간대가 발표한 5월 미국 소비자심리지수(예비치)는 67.4로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낮게 집계됐다. 소비자들이 외식 비용을 줄이면서 관련 업종은 타격을 받고 있다. 맥도날드는 1분기 전 세계 동일매장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해 전문가들이 전망한 2.1%에 못 미쳤다. 반면 집밥을 해먹기 위한 소비가 늘면서 월마트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8% 증가하며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다. 존 데이비드 레이니 월마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집밥보다 외식 가격이 약 4.3배 비싸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연체율도 치솟고 있다. 뉴욕연은에 따르면 1분기 90일 이상 연체된 신용카드 연체율은 6.9%로 1년 전 4.6%보다 올랐다.

Fed의 ‘2023년 미국 가정의 경제적 웰빙 보고서’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미국 가구의 65%가 “재정 상태가 나빠졌다”고 답했다. 또 성인의 17%가 각종 월별 청구서 납입금을 전액 내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11%는 재정적인 어려움에 따라 지난달에 가끔 또는 자주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전망 엇갈려

엇갈린 경제 지표에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미국 경제가 연착륙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전망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글로벌 투자은행 파이퍼샌들러의 낸시 라자르 수석 글로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가 “지금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은행이 대출 기준을 강화하고 금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연착륙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항상 경착륙했다”며 “최근 미국자영업연맹(NFIB)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1990년 초반과 2000년의 침체기 때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

전망 자체가 쉽지 않다는 진단도 나온다. 마이크 월슨 모건스탠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 전망과 관련해 “연착륙, 노랜딩(무착륙), 스태그플레이션 등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진정한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 증시에서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연내 금리 인하 여부와 관련해서도 전망이 분분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이날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금리에 대해 광적으로 혼란스럽다”며 “이에 대한 정답을 확실히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임다연/김세민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