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화 전시회는 뻔하다고?…'10인10색' 단체전도 그럴까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 단체전
‘예술적 시각으로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 침잠과 역동’
공성훈, 바닷가의 남자, 2019
길거리 카페, 비 오는 거리, 파도치는 바닷가….

모두 누구나 한 번쯤 스쳐 지나갔을 풍경이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마다 감상이 다르다.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풍경이라는 평범한 주제를 놓고도 모두 다른 작품을 내놓는 이유다. 국내 화단에서 풍경 작품을 모은 전시는 익숙하다. ‘풍경전은 뻔하다’는 말도 나온다. 서울 종로구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단체전 ‘예술적 시각으로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 침잠과 역동’은 다르다. 풍경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작가 10명이 한자리 모였기 때문이다.
정영주, 아스라이1, 2023
이번 전시는 미술평론가 하재훈이 구상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10인의 풍경 작품을 갤러리로 모았다. 공성훈 국대호 김건일 김동욱 송지연 윤정선 이만나 이상원 정영주 정유미의 작품 35여 점이 전시된다. 풍경을 묘사하는 작가들의 각자 다른 방식에 주목했다.

그가 집중한 건 역동과 침잠. 풍경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작가들과 고요하게 그려낸 작가들의 대조적인 작업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1층은 역동, 3층은 침잠, 그리고 그 사이 2층에서는 두 가지 에너지가 섞인 그림들을 배치했다. 이번 전시에는 대작 풍경화가 많이 나왔다는 것도 특별하다. 판매가 중요시되는 상업화랑에서 지갑을 열기 힘든 100호 이상의 대작들을 엄선해 내놓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재훈 평론가는 “작은 작품들은 대형 작품에 담긴 작가의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서 걸었다”고 말했다.
이상원, Ski Resort, 2011
갤러리 문을 들어서면 마주하는 이상원의 작품은 그 크기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2011년작 ‘스키 리조트’는 200호 크기(197cm×333cm)의 캔버스에 흰 눈 사이를 활강하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다. 이상원은 2000년대 사람이 몰려드는 관광지를 찾아 대형 캔버스에 그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는 작업을 해 온 작가다.

작고한 공성훈의 작품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2021년 타계한 그는 생전 다작을 하지 않은 작가인데다, 작고 후 기증되지 않고 남은 작품의 수가 100여 점 밖에 되지 않아 기존 화랑 전시에서 만나보기 힘들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남긴 풍경작 중 하나인 ‘바닷가의 남자’가 걸렸다. 이 작품 또한 대형 캔버스에 그려졌다. 거친 바닷가에 홀로 남겨진 남성을 통해 자연이 주는 고요함 속 불안함을 표현해냈다.
정유미, Soft breathing, 2021
2층에 올라서면 보이는 정유미의 ‘부드러운 호흡’도 그 폭만 5m에 달하는 초대형 작품이다. 푸른 하늘 아래 넓은 바다에서 파도가 넘실거리는 회화는 대형 캔버스를 만나 관객에 사실감을 선사한다.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담아내는 대신 파도와 바다, 푸른 색감을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오늘날 미술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작가 중 한 명인 정영주의 작품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하늘에서 기와집 지붕이 옹기종기 모인 모습을 바라본 고요한 풍경을 그렸다. 실제 풍경 위에 작가 자신이 가진 유년시절의 기억을 덧입힌 그림이다.
김건일, a trivial moment, 2024
넓고 거시적인 풍경이 아닌 작은 생물에 집중한 작품도 있다. 김건일의 연작이다. 그는 동양화과를 졸업한 작가이지만 동양 안료 대신 아크릴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단순히 붓으로 물감을 칠하는 대신 색감을 칠하고 벗기는 과정을 반복하는 작업 방식을 택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그가 올해 그린 가장 최신 작품이다. 돌과 미생물의 세계도 큰 인간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담겼다.층별로 풍경을 다른 감성으로 해석해 관객에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전시다. 작가 10인의 각자 다른 작품 세계를 하나의 주제로 엮은 전시 구성도 흥미롭다. 넓은 공간에 걸린 대형 작품들은 뜯어보는 재미도 있다. 전시는 6월 18일까지 열린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