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은 왜 하필이면 야구모자를 썼을까?

[arte] 한국신사의 스타일 인문학
지난 4월 25일 공중파와 일간지는 물론 수많은 소셜 미디어까지 온통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한 사람으로 도배가 됐다. 아이돌 그룹과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소유권과 존립에 대한 논의가 커져 기자회견까지 이어진 모양이었다.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어 경제 정치 뉴스에 관심이 없는 필자도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게 되었고 기사들을 찾아보다 결국 주인공의 차림에 관심이 쏠렸다.

사실 기자회견이라는 말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아니 기자회견에 웬 야구모자?’였다. 기자회견을 자청할 정도의 긴급하고 중요한 사안이라면 진중한 표정과 함께 마땅히 품위를 갖춘 정장을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모두에게는 그야말로 궁금증이 폭발하였고 야구모자 덕분에 더 많은 이목을 끄는 기자회견이 되었다.
ⓒ한국신사 이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중심엔 돈이 도사리고 있고, 전 지구적 문화 중심이 된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가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K-pop과 관련된 해프닝은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단순 고용인과 고용주간의 노동쟁의 정도가 아닌 주식 시장의 시가 총액 수 조가 왔다 갔다 하는 초미의 사건이니 모두의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주인공이 쓴 야구모자와 복장에 대한 궁금증은 삽시간에 회자되며 사건 본연의 문제를 떠나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화제의 중심에 있다.

후훗, 난세에 기회가 생긴다고 하지 않던가? 이 시끌벅적한 해프닝을 틈타 중증 옷 환자인 필자는 야구모자를 언급할 기회를 포착했다.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자료를 하나씩 꺼내며 야구모자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순수 뇌피셜을 동원하여 기자 회견의 주인공이 야구모자를 눌러쓴 이유를 흥미진진하게 파헤쳐 볼까 한다. 자 지금부터 모두 집중하시라!
그럼 가장 먼저 ‘스타일 인문학’에 어울리게 야구모자의 역사를 살짝 다뤄볼까 한다. 미국의 국모(국가 모자)라 불릴만한 지위를 일찌감치 획득한 야구 모자가 미국을 떠올리는 대표적인 스포츠 야구에서 기인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 같다. 1800년 즈음 시작되어 민간에서 점점 인기를 얻으며 1876년 드디어 내셔널 리그가 설립될 때까지도 야구 선수들은 규정된 유니폼이 없이 시합을 펼쳤다.넓디넓은 운동장에서 강렬한 태양 피하고 높이 뜬 공을 안정적으로 잡아내기 위해 모자에 대한 필요는 간절했지만 특별한 규정이 없으니 그저 아무 모자나 눌러 쓸 수밖에 없었다. 보통은 당시 다른 스포츠에서 사용되던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쓰기도 했는데, 1888년 한 회사에서 발간한 야구 관련 가이드 북(Spalding’s Official Baseball Guide of 1888)에서는 다양한 모자들이 선수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사용되었음이 그 증거다.
A.G.스폴딩&브라더스에서 발간한 야구 가이드 북 표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야구모자로의 형태적 완성은 세기가 바뀌면서 점진적으로 정착되는데 특히 1854년 창단된 브루클린 엑셀시어즈(The Brooklyn Excelsiors)의 공이 크다. 1860년 전설적인 연승 행진으로 야구의 인기를 전 미국 땅에 퍼뜨린 브루클린 엑셀시어즈는 고향 땅을 떠나 다른 팀들과의 원정경기에서 19승 2패라는 당시로서의 대기록을 남기며 큰 인기를 얻었는데 지금의 야구 모자보다는 조금 챙이 길고 헐렁한 형태지만 모자 꼭대기에 버튼이 박힌 오늘날의 야구모자와 매우 흡사한 형태의 모자를 선수들이 착용하면서 팀의 인기와 함께 소위 “브루클린 스타일”이라는 특별한 별칭을 얻으며 1940년대까지 야구 모자의 전형을 이루는 데 기여한다.
야구모자에 커다란 알파벳 이니셜이 처음 등장한 것도 이즈음으로 1894년 보스턴 야구 클럽이 이를 처음 도입했고 다음 시즌에 몇몇 팀들이 이를 따라 하면서 정착되었다. 한편 1901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는 검정 바탕에 붉은색 호랑이 문양을 마스코트로 모자에 각인한 첫 메이저 리그 팀이었는데 수년 뒤 다시 디트로이트의 ‘D’로 바뀌긴 했지만, 야구모자의 앞면을 광고용 공간으로 적극 활용하는 방식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소재의 발전으로 라텍스 고무가 모자챙의 내부 형태를 잡는 용도로 활용되면서 1940년 전후 드디어 현재의 야구모자와 거의 유사한 형태가 완성된다. 얼굴 부분만 가리는 조금 더 기다란 챙과 머리를 완전히 감싸는 더 견고한 구조를 갖추면서 지금과 동일한 형태가 완성된다.
ⓒ텐아시아
그럼 이쯤에서 민희진 그녀가 야구모자를 쓴 이유를 추측해 보자. 첫 번째 추론은 ‘자신의 논리를 펼치기 위한 안정감 확보!’다. 1940년대 비로소 현대의 야구모자의 형태를 갖추기 이전까지 대부분 야구모자는 사이클 모자처럼 짧은 챙을 지닌 다소 귀여운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는 야구 선수들에게 기능적으로 충분치 못했는데, 주간 경기 시 넓은 운동장에서 강렬한 태양을 막아 주기에도, 이미 야간 라이트가 도입된 당시 상황에 야간 경기의 강력한 조명 역시 막아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충분히 긴 모자의 챙은 높이 뜬 공을 잡을 때 눈에 그림자를 드리워 수비수가 공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했다. 수많은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으로부터 효과적인 대응을 해야 하는 그녀에게 야구모자는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비난과 공격성이 가득 담긴 질문들도 적지 않았을 터, 자신이 준비된 논리를 펼치는 동안 야구모자는 늑대 같은 강렬한 시선과 의심의 눈초리들로부터 착용자를 보호해 주었을 것이다.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재키 로빈슨 / ⓒ위키피디아
두 번째 추론은 비논리의 가십성 추론이지만 상당히 재미난 추론이다. ‘충분히 긴 시간 많은 얘기를 늘어놓겠다는 암시’였다는 것. 예상보다 두 배 이상 길어진 긴 기자회견에서 그녀가 택한 모자는 공교롭게도 LA 다저스의 모자였다. 자료 사진들에 의하면 평소 다른 야구 모자도 즐겨 썼던 그녀가 기자회견 당일 유독 푸른색의 다저스 모자를 고른 것은 투머치 토커(말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라는 별명을 일찌감치 획득한 국민 야구 영웅 박찬호 선수의 모자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추리인데 그의 별명에 기대어 엄청나게 많은 내용을 전달할 심리적 장치로서 이 푸른색 다저스의 모자가 사용되었다는 논리다.

물론 누리꾼들의 우스갯소리에서 유래했지만, 야구모자의 이니셜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논리적인 추리라 하겠다. 야구모자를 활용한 홍보의 효과성은 수많은 미국 정치인들이 이 모자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자신의 공약을 강조하는데 매우 유효했다는 역사적 사실로 증명된 바 있다.
ⓒAP연합뉴스
수많은 아이돌 그룹을 성공의 반열에 올려둔 입증된 실력자인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 역시 충분히 계산된 전략에 기반을 두어 왔다는 가정은 모자의 컬러, 모자에 새겨진 로고 하나까지도 계산된 선택이라는 추측이 필요충분한 바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기자회견 앞두고 이런 인위적/암시적 장치로 국민적 영웅 박찬호의 이미지를 빌어 충분한 논리를 설파하겠다는 장치적 암시를 두었다고 추리하는 것도 큰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야구모자의 역사를 논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은 뉴에라(new Era)라는 미국의 모자 회사다 1934년부터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모자를 공급해 왔는데 특히 개인 선수들의 요구에 맞춰 맞춤 모자를 공급하면서 큰 인기를 얻어 1950년대에는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팀들이 이 회사의 모자를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뉴에라 사는 1954년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59Fifty'라는 제품을 탄생시키는데 공기구멍이 하나씩 뚫린 6개의 조각이 머리통을 감싸는 커다란 챙이 달린 디자인을 완성했고 선수들의 큰 사랑을 받으면서 공전의 히트로 수많은 팬들이 바로 이 모자를 쓰고 응원하고 사 모으며 사랑하는 현재의 야구모자의 팬덤을 확립시킨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은 야구모자가 야구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널리 활용되는 데는 연예인들의 영향도 컸다. 수많은 야구 역사가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으는 야구모자의 인기는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80년대 미국 범죄 드라마 매그넘 P.I의 주인공 톰 셀렉(Tom Selleck) 덕분인데 어쩐지 한국에서는 반영이 안 되었지만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어 야구모자가 미국인들의 일상으로 바짝 다가왔고 역시나 80년대의 힙합 음악의 대세였던 레퍼 닥터 드레, 척 디 그리고 비스티 보이즈가 사랑한 야구모자는 고스란히 팬들의 일상에 파고들게 된다.
'뉴에라(new Era) 캡 컴퍼니'의 로고(위)와 '59FIFTY' 모델(아래) / ⓒ뉴에라 홈페이지 캡처
아마도 민희진이 야구모자를 쓰기로 결심한 세 번째 이유도 이런 이미지 메이킹과 관련이 있을 테다. 기자회견에서도 강조된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뉴진스에는 평소 자신이 즐기던 야구모자와 헐렁한 티셔츠의 편안한 스타일을 심어 넣었고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뉴진스를 창조해낸 어머니로서 자신이 들어부은 헌신과 애정을, 모두가 주목하는 기자회견에서 야구모자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정말 민희진 그녀가 야구모자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그녀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역사를 통해 입증된 야구모자의 가치와 효용을 그녀도 십분 활용했으리라는 추리만 가능할 뿐이다, 이제 거의 200년이 가까운 역사를 지니게 된 야구모자를 알고 쓰게 되는 계기를 제공해준 그녀가 문득 고맙게 느껴진다. 얼굴이 커서 야구모자를 잘 안 쓰던 필자도 오늘만큼은 쓱 한번 야구모자를 걸쳐볼까 한다. 함께 써보시면 어떨지?

한국신사 이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