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믿고 계약했는데…실소유주 부부 극단적 선택에 '발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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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건설사와 계약한 전세 세입자들, 보증금 떼일 처지임대차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평가받던 '회사보유분' 전세를 살던 세입자들의 보증금이 위험해졌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며 도산하는 중소 건설사가 늘어나고 있는 탓이다.
벼랑 끝 내몰린 지방 중소 건설사들…정부 PF 정리에 '공포'
줄도산 현실화할 경우 전세 세입자 피해도 확산 우려
24일 지역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광주광역시 광산구 쌍암동의 한 도시형생활주택에는 전세사기 피해 공동 대응을 요청하는 안내문이 걸렸다. 안내문에는 "시행사 사무실이 폐쇄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전세 문제에 공동 대응하고자 하니 관리사무소에 연락처를 남겨달라"는 내용이 담겼다.이 도시형생활주택은 2015년 준공된 1차(275가구)와 2018년 준공된 2차(268가구), 2020년 준공된 3차(70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시행 건설사인 A사는 미분양 물량을 직접 전세로 돌렸고, 세입자들은 회사보유분이라는 말에 보증금이 안전할 것이라 믿고 전세 계약을 맺었다.하지만 최근 전세 계약이 만료됐음에도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자금난에 빠진 A사가 문을 굳게 걸어 닫은 상태다. 광주광산경찰서에 따르면 회사 실소유주인 건설사 사장 B씨는 이달 부인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에 A사와 전세 계약을 맺은 세입자 사이에서는 보증금을 고스란히 떼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근 개업중개사는 "정확한 숫자를 알긴 어렵지만, 회사보유분으로 전세 계약을 맺은 세입자가 상당히 많다"며 "회사보유분은 전세가가 높아 보증보험 가입도 안 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보증금 미반환이 발생하고 건설사는 연락 두절이라 세입자들의 불안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 도시형생활주택 관리사무소 측도 "현재까지 30여명이 연락처를 남겼고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건설사 믿고 전세 계약 맺었는데…실소유주 부부, 극단적 선택
세입자들이 공동 대응에 나서더라도 보증금을 받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회사의 선순위 부채가 많아 세입자에게 돌아갈 자금이 없는 탓이다. 지역 건설 업계에 따르면 A사는 광주역 인근에 오피스텔을 짓다가 사업이 좌초했다. 공사 비용과 수분양자 계약금·중도금 반환 등으로 시행사인 A사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B씨는 이를 해결하고자 개인 사채까지 끌어다 쓴 것으로 알려졌다.올해 1분기 기준 지역 새마을금고 등 은행에서 건물과 토지 등을 담보로 A사에 빌려준 금액은 약 82억원 남아있다. 회사에 남은 토지와 건물 등 자산은 약 90억원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미수금과 단기대여금 등으로 1분기에만 90억원에 달하는 유동자산 대손충당금이 발생했다"며 "매입채무와 협력업체 대금 등을 따지면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실소유주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이어 "은행 외 채권자들은 사무실 집기라도 챙겨야 하는 처지"라고 덧붙였다.부동산 업계에서는 광주와 같은 사태가 지방 곳곳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분양시장 침체와 원자잿값 급등으로 재정부담이 늘고 미분양에 몸살을 앓는 중소 건설사들이 정부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정리로 타격을 입으면 버틸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미분양 물량인 '회사보유분' 전세 세입자들의 보증금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국토교통부 주택통계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4964가구로 전월보다 90가구 증가했다. 주택산업연구원은 통계에 누락된 미분양 주택이 4만 가구를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분양 물량은 사업 주체의 자발적인 신고로 집계하는 만큼, 자료 제공을 거부하는 곳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집을 다 짓고도 주인을 찾지 못한 준공 후 미분양도 1만2194가구로 전월보다 327가구 늘었다. 지난해 8월부터 8개월 연속으로 증가했다. 특히 지방의 상황이 심각하다. 수도권의 준공 후 미분양은 1.1% 감소했지만, 지방은 3.7% 늘었다. 대구는 1306가구로 전월보다 20.4%, 경북은 1008가구로 전월보다 27.6% 급증했다.
미분양 늘어나는 지방 부동산 시장…중소 건설사 '직격'
중소 건설사들은 미분양 물량을 소진해 공사대금을 회수하려 노력을 기울이지만, 시장 분위기는 녹록지 않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이달 전국 아파트 분양전망 지수는 기준점 100을 하회하는 82.9로 나타났다. 이 지수는 지난해 8월 이후 100 아래에 머물고 있는데, 기준점보다 낮으면 주택사업자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사업이 많다는 의미다.건설사들의 미수금도 급격하게 불어나고 있다. 대형 건설사에 비해 현금 유동성이 부족한 중견·중소 건설사들은 미수금이 증가하면 자금 경색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부도설까지 돌았던 신세계건설은 지난해 미수금이 75억원(증가율 121%) 증가한 약 137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미청구공사액도 23억원 넘게 늘었다. 미수금은 건설사가 공사나 분양하고도 받지 못한 대금을 말한다. 건설경기가 좋지 않고 미분양 물량도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부실 위험이 커진다.지방 중소 건설사를 중심으로 폐업도 증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종합건설업 폐업 건수는 10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5.3% 늘었다. 올 들어 부도난 건설업체도 3월까지 9곳으로 집계됐는데, 7곳이 지방 업체다.여기에 더해 정부까지 부동산 PF 정리에 나서면서 중소 건설사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중소 건설사들이 보유한 사업장은 서울보다 사업성이 낮은 지방에 주로 있다보니, '부실 사업장'으로 지목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중소 건설사 관계자는 "가뜩이나 미수금이 늘어 자금 사정이 악화한 처지에 보유 사업장이 부실 판정을 받아 상각 또는 경·공매 수순을 밟는다면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도 "지방 사업장이 대거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며 "지방 건설사들의 자금 손실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지원은 우량 사업장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유동성이 취약한 중소 건설사들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며 "중소 건설사의 미분양 물량을 전세로 임대한 세입자들도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피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