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운전대서 손 떼라는거냐"…고령자 조건부 운전면허에 '시끌' [이슈+]

국토부, 교통사고 감소 일환
고령자 야간·고속도로 운전 금지
대책 내놨다가 하루 만에 '해명'

서울 택시기사 절반 '고령자'
사회적 파장 우려도
"고령자 기준 자체를 올려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00세 시대라더니 늙었다고 집에만 있으라는 건가요."

경기도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68세 자영업자 김모 씨는 매일 일터에서 집까지 왕복 1시간 30분가량을 운전해 다닌다. 그는 21일 국토부와 경찰청이 발표한 '고령자 조건부 운전면허' 정책에 "이동권 침해"라며 비판했다. 이어 "늙었으니까 무조건 운전대서 손 떼라는 것처럼 느껴져 서럽다"며 "경기도도 운전해서 다니는 마당에 버스도, 택시도 안 들어오는 시골 어르신들은 어떡하나"라고 푸념했다.

고령 운전자 조건부 운전면허, 뭐길래

20일 관계부처가 발표한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대책'에는 '고령 운전자 운전자격 관리, 운전능력 평가를 통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 검토'란 내용이 포함됐다. 이와 관련 정부는 21일 "보행자 등의 교통안전을 현저하게 위협하는 경우에 한해 고령자 운전 자격을 제한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라며 조건부 운전 면허제 도입 배경을 밝혔다.

이는 운전 능력에 따른 운전 허용 범위를 차등적으로 허용하는 제도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운전 능력에 따라 야간, 고속도로 운전을 금지하는 등 운전 허용 범위를 달리하는 조건부 면허를 발급하고 실질 운전 능력을 평가해 운전 허용 범위를 설정하는 방식이 유력하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내용이 발표되자 반발이 거셌다. 대부분 "노인의 발을 묶는 정책이다", "사회 갈등을 조장한다", "생계형 운전자는 어쩌냐" 등의 비판이었다.이에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은 지 하루 만에, 정부는 "특정 연령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며 논란 진화에 나섰다. 경찰청은 추가자료를 통해 "조건부 운전면허는 이동권을 보장하고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라며 "의료적·객관적으로 운전자의 운전 능력을 평가한 뒤 나이와 상관없이 신체·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교통사고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운전자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명했다.
처인구에서 발생한 고령 운전자 사고. 인명 피해는 없었다. /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앞서 정부가 이러한 대책을 내놓은 배경에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관련 통계가 자리한다.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2022년 65세 이상 노인 운전자가 낸 사고는 3만4652건으로 집계됐다. 2005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고치다. 최근 발표된 2023년 노인 운전자 사고 건수 또한 14% 늘어난 3만9614건이었다. 2년 연속으로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최근 들어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연달아 일어나며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달 22일에는 경기 성남시 판교노인종합복지관 주차장에서 90대 고령 운전자가 차를 몰다 행인을 덮져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다. 이튿날인 23일 오전에는 경기 용인시의 한 지역농협 건물로 70대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돌진했다.이에 정부는 2019년부터 만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3년에 한 번씩 심사를 거친 후에 면허를 갱신하는 '운전면허 수시적성검사'와 '운전면허 자진 납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운전면허증을 지자체에 반납하면 지자체별로 10만~30만원 상당의 현금이나 지역화폐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발적 면허 반납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는 목소리가 크다. 경찰청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 운전면허 반납 현황은 2019년부터 줄곧 2%대에 머물러 있다. 2022년 2.6%로 반납률 최고치를 찍었으나 그마저 지난해 2.4%로 다시 쪼그라들었다.

운수업 인력 제약 우려도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서는 노인 운전을 제한하는 것이 단순히 노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노동강도가 높고 근무 시간이 길어 기피업종으로 분류되는 운수업의 경우 이미 고령층에 노동 인력을 의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65세 이상 고령 택시기사의 수는 법인과 개인택시를 모두 포함해 10만7947명에 이른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기준 개인택시 기사의 평균 연령은 64.6세이며 65세 이상 택시기사의 비중은 전체의 50.3%에 달한다. 서울시의 75세 이상 초고령 택시 운전자의 수도 4912명에 달한다.

60대 개인택시기사(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소속) 이수원 씨는 "고령 운전자를 논하기에 앞서 노인을 65세부터라고 규정짓고 접근해 생긴 논란"이라며 "요즘 65세는 신체 능력도 우수하고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는 이도 많은데 운전 능력이 떨어진다는 시각으로 바라보면 65세 이상 택시기사들에게 부정적인 시선이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택시기사들은 이미 65세부터 자격 유지 검사를 의무적으로 받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노인 운전자 사고가 급증한 것에 관해선 "고령 운전면허 보유 인구가 늘어난 것에 비하면 높지 않은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가 6375건 늘어날 때 고령 운전자는 141만261명 증가했다. 끝으로 이 씨는 "차량에 긴급제동장치를 마련하는 등 기술적으로 먼저 보완하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고령층의 조건부 운전면허와 관련, 이미연 한국교통안전공단 교수는 "당장 내년이면 우리나라는 고령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라며 "고령 운전자 제도를 정립해야 할 시점인 건 맞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의 설득력을 갖추려면 고령층 생계형 운전자에 대한 대책과 대중교통수단 개발까지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