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에 무역장벽까지'…총성 없는 글로벌 반도체 육성 총력전

블룸버그, 26조 韓 지원안에 "정부가 더 적극적 역할" 평가
미·EU 등 각국, 보조금 약 110조원 투입하며 '쩐의 전쟁'
미국과 중국,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반도체 분야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총성 없는 '국가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23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제2차 경제이슈점검회의를 열고 17조원 규모의 '반도체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포함해 총 26조원에 이르는 반도체산업 지원안을 내놨다.

미국이 반도체법을 토대로 한 천문학적 보조금을 통해 세계적 기업들을 끌어들이는 것을 비롯해 각국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보조금·관세·무역장벽 등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 韓정부, 26조원 규모 종합지원안…인프라 조성에 속도
한국 정부는 이날 산업은행에 17조원 규모의 반도체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방안을 포함해 총 26조원 규모의 지원안을 내놨다. 또 올해 일몰 예정이던 세액공제를 연장하는 한편,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등을 지원하기 위한 1조원 규모 반도체 생태계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경기 남부에 조성 중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대해서는 전기·용수·도로 등 인프라 시설 조성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정부가 지난 10일 반도체 수출기업 간담회에서 정책금융과 민간펀드 등을 통해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원 프로그램 규모 10조원의 2배 이상이다. 윤 대통령은 "반도체는 국가 총력전이 전개되는 분야"라면서 "세계 각국은 반도체에 국가의 운명을 걸고 배수진을 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업계는 2047년까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구축에만 622조원을 투자하기로 하는 등 글로벌 경쟁 격화에 대비해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는 상황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정책 발표와 관련, 그동안 삼성전자 등 기업 주도 투자를 선호해왔던 정부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미국, 반도체법 통해 공급망 재편 시도…中 반도체에 50% 관세
중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 육성에 주력해왔지만,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반도체 경쟁이 본격화된 것은 미국이 반도체법 등을 통해 안보적 관점에서 접근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이를 통해 중국과의 경쟁에 맞서는 것은 물론 자국 내 반도체 산업 공급망을 강화하고 대만·한국 등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며 반도체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은 반도체법을 통해 공장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으로 총 390억달러(약 53조2천억원)를 지원하기로 했으며, 대출 및 대출 보증으로 750억 달러(약 102조3천억원)를 추가 지원하고 최대 25%의 세액공제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64억달러·약 8조7천억원)를 비롯해 인텔(85억달러·약 11조6천억원), TSMC(66억달러·약 9조원), 마이크론(61억달러·약 8조3천억원) 등에 328억 달러(약 44조7천억원)의 보조금을 발표한 상태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및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막기 위한 통제 조치를 연이어 내놓았고, 지난 14일에는 중국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내년에 25%에서 50%로 인상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EU 역시 지난해 역내 반도체 생산역량 증대를 위한 반도체법 시행에 들어갔다.

EU의 반도체법은 현재 약 10%인 EU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30년까지 20%로 2배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예산과 민간 투자금까지 포함해 총 430억 유로(약 63조5천억원)가 투입될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2일 미국·EU·인도·일본 등이 반도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 과정에서 지금까지 투입을 확정한 보조금 규모가 807억 달러(약 110조원)에 가깝다고 추산한 바 있다.
◇ 대만 총통, 취임연설서 "대만을 AI 섬으로"
한국 주변국들도 첨단 반도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 TSMC가 소재한 대만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라이칭더 신임 총통은 선거 공약으로 '타오위안·신주·먀오리 대(大)실리콘밸리 계획'을 내걸었고, 대만 정부는 올초 이러한 대만판 실리콘 밸리 공사에 2027년까지 1천억 대만달러(약 4조2천억 원)를 투입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대만 매체에 따르면 대만 정부의 지원 하에 미국 반도체기업 AMD와 엔비디아가 대만에 아시아 최초의 연구개발(R&D) 센터를 추진·건설 중이다.

라이 총통은 20일 취임 연설에서 "대만은 반도체 선진 제조 기술을 장악해 인공지능(AI) 혁명의 중심에 서있다"면서 "글로벌 AI화 도전에 직면해 반도체 칩 실리콘 섬의 기초 위에 서서 전력으로 대만이 'AI 섬'이 되도록 추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중국 정부가 구체적 보조금 규모를 공개하지 않는 만큼 추정치는 다양하지만, 블룸버그는 중국이 반도체 산업에 쏟아붓는 자금 규모가 미국을 한참 뛰어넘을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의 최근 추산에 따르면 중국은 반도체 산업에 1천420억 달러(약 193조7천억원) 이상의 지출을 집행 중이라는 것이다.

또 중국 정부는 SMIC와 화웨이 등 주요 기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를 관장하기 위해 추가로 270억 달러(약 36조8천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정부는 최근 자국 자동차업체들에 내년까지 내수 반도체 사용 비중을 20∼25%로 올리도록 요구하는 등 다양한 산업정책을 통해 자국 산업 육성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은 2021년 6월 경제안보 관점에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으며, 이후 일본 정부는 253억 달러(약 34조7천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한 상태다.

일본 정부는 구마모토현에 위치한 TSMC 제1·2공장에 최대 1조2천억엔(약 10조5천억원)가량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으며, 도요타·NTT 등 자국 대기업들이 협력해 만든 라피더스에도 9천200억엔(약 8조1천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일본은 민관 부문을 합해 642억 달러(약 88조원) 규모 투자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2030년까지 국내 생산 반도체의 매출을 3배로 늘려 963억 달러(약 131조3천억원)에 이르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