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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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제도권 편입 발빨라져지난 1월 11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11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거래소 상장을 승인함으로써, 대표적 가상자산인 비트코인이 금이나 원유와 동등한 일반적 투자 대상의 지위를 얻게 했다. 이에 힘입어 석 달 만인 3월 11일,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1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또 다른 가상자산인 이더리움도 현물 ETF 승인을 신청한 상황으로, 24일 SEC의 발표를 앞두고 있다.
'역동성' 유지할 지원 정책 필요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가상자산이 급속히 제도 금융으로 편입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 1분기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한 미국 내 기업만 937개이고, 투자 규모는 약 15조원에 달한다. 반면에 전통적인 금 현물 ETF에 투자한 기업은 같은 기간 95개에 불과했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미국 대선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달러화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가상자산에 부정적이었지만, 이번에는 선거 기부금을 가상자산으로도 받겠다는 둥 태도를 바꿨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가상자산에 대해 강경한 규제만을 계속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이처럼 블록체인의 혁신 기술을 기반으로 암호화폐에서 시작해 모든 자산을 토큰화하는 디지털화 금융 시대에 가상자산에 관한 막연한 부정적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가 아니라 피해 예방이나 구제 방안에 대한 고민이 먼저다. 실제로 작년 6월부터 아직 1년이 되지 않았음에도, 금융감독원에 신고된 가상자산으로 인한 피해는 무려 2209건에 달한다. 경찰청이 집계한 작년 사이버 사기 유형 중 가상자산 활용 범죄가 38.3%로 직거래(40.2%) 다음으로 높았다.
금감원이 지난달 디지털 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와 함께 발간한 <가상자산 연계 투자사기 사례 7선>에는 불법 가상자산거래소, 록업(Lock-up: 가상자산 유통을 일정 기간 묶어 놓는 것) 해제일 가격 폭락, 가짜 코인 판매, 신규 상장 예정 코인 등에 관한 주의사항이 담겼다.
국내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허용하지 않는 등 암호화폐와 관련한 제도적 장치가 아직 갈 길이 멀다. 다만,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가상자산이나 증권형 토큰에 대한 법제화와 가상자산 현물 ETF 허용 등 제도 정비를 공약한 바 있다.이처럼 국내 암호화폐의 제도적 환경은 미완성이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국내 투자자의 역동성은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올 1분기 가상자산 거래량에서 원화 거래가 4560억달러로 달러화 거래(4450억달러)를 앞서 법정화폐 중 1위가 됐을 정도다. ‘김치 프리미엄’(한국에서 거래되는 가상자산 가격이 글로벌 대비 높은 현상)이라는 단어도 흔하게 사용된다.
우리의 이런 역동성이 디지털화하는 금융시장에서 경쟁의 원천이 되기 위한 첫 반석은 바로 7월 19일부터 시행되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성공적 안착이다. 이에 가상자산 전담 조직 신설 같은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의 일련의 준비 과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성과를 내기를 기대한다.
또한, 금융감독 차원을 넘어서서 정부는 가상자산의 근간인 블록체인 및 암호자산 산업 육성에도 관심을 갖고 지원에 나서야 한다. 지난 16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을 만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배경에 관해 논의했다고 한다. 이 원장이 전망한 ‘올 하반기 비트코인 현물 ETF의 국내 도입’에 대한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