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성장 이끈 정부 돈…'민간 주도'라던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강진규의 데이터너머]

서울 중구 한국은행 전경. 사진=최혁 기자
미국과 중국 등 이른바 주요 2개국(G2) 경제의 높은 성장세에는 정부의 재정부양책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소비 지원과 인프라 투자가 이뤄지면서 성장이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이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부는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이 민간 주도로 이뤄졌다고 평가했지만 한국은행은 '정부 이전지출 확대'를 깜짝 성장의 주 요인으로 꼽았다.

24일 한은이 발표한 '최근 G2 경제상황에 대한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올들어 미국과 중국은 양호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은 1분기 1.6%(연율 기준) 성장하면서 '저조한 성장'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고용상황이 양호하고, 소비가 견조해 내수 중심의 성장모멘텀을 이어가는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은 5.3%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한은은 "두 나라의 양호한 성장세는 모두 정부의 재정부양책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학자금 대출 탕감과 가계로의 이전지출 확대가 민간 소비 증가로 이어졌다고 봤다. 주정부와 지방정부의 인프라 투자도 견조한 성장의 요인으로 지목됐다.

중국은 재정여력이 크게 하락한 지방정부를 대신해 중앙정부가 지난해 1조위안 규모의 국채를 발행해 SOC 투자를 확대하고, 설비 교체 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소비와 투자 회복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정책을 통한 투자 촉진도 성장의 요인으로 꼽혔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CHIPS) 등을 통해 전략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기업투자 촉진 정책을 쓰고 있다. 중국은 수출기업에게 암묵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이같은 정부지출과 산업정책이 주도한 성장세는 올해 미국과 중국이 내수 중심 성장 흐름을 이어가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됐다. 문제는 이같은 정부 주도의 성장이 계속 이어지긴 어렵다는 점이다. 한은은 "재정적자와 누적된 정부부채가 성장경로의 리스크로 잠재해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지출 확대에 따른 성장 효과는 한국에서도 나타났다. 한은은 지난 23일 오후 경제전망 설명회를 열고 1분기 GDP가 큰 폭으로 증가한 요인 중 하나로 정부의 이전지출을 꼽았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중앙정부의 1분기 이전지출은 151조원으로 작년 134조원에서 17조원 가량 늘었다"며 "이전지출이 모두 민간소비에 반영됐다고 볼 순 없지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호 조사국장은 이전지출이 민간소비를 약 0.1%포인트 더 높였다고 덧붙였다.

당초 정부는 1분기 성장이 민간 주도라고 강조해왔다. 민간의 성장 기여도가 1.3%포인트, 정부는 0.0%포인트로 나타난 것이 근거였다. 하지만 정부의 자금이 민간에 이전되고, 그것이 소비 증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부가 내세웠던 '민간 주도 성장에 따른 선명한 청신호' 등의 표현이 머쓱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한은이 미국과 중국 경제에 대해 "누적된 정부부채가 성장 경로의 리스크로 잠재해있다"고 설명한 것처럼 한국도 재정적자가 확대되면서 부채가 늘어나는 것을 경계해야할 시점으로 평가된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045년 100%, 2050년에는 120% 이상이 될 것"이라며 "부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재정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