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좌우를 묶어준 정치 질서가 실종된 시대

뉴딜과 신자유주의

게리 거스틀 지음 / 홍기빈 옮김
아르테 / 680쪽|4만원

극단으로 흘러가는 미국 정치
100년간 美 정치이데올로기는
뉴딜과 신자유주의 2개가 지배

진보 진영의 '뉴딜 질서' 이후
1970년대부터는 신자유주의
<뉴딜과 신자유주의> 저자는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이 신자유주의 질서의 몰락을 뜻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미래가 확실해 보이던 때가 있었다. 나아가야 할 길이 명확했고 모두 그 길을 따라 전진했다. 암울한 상황도 있었지만 희망적이었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은 아니다. 혼란의 시대다. 기술과 세계 정세가 급변한 탓도 있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은 지배적인 정치 질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뉴딜과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바다. 저자 게리 거스틀은 미국 역사학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미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1989년 <뉴딜 질서의 흥망 1930~1980>을 동료와 함께 썼다. 이 책을 대대적으로 깁고 더한 후속작이 <뉴딜과 신자유주의>다.
‘정치 질서’는 쉽게 말해 정치 이념의 패러다임이다. “2년, 4년, 6년 여러 선거 주기를 버텨내면서 중장기적으로 미국 정치를 형성해온 이데올로기, 정책, 유권자들의 배치 상태를 뜻한다”고 설명한다. 지난 100년 2개의 정치 질서가 미국을 지배했다. 1930년 발흥해 1970년에 무너진 뉴딜 질서, 1970년대 일어나 2010년대에 무너진 신자유주의 질서다.

독특한 것은 진보와 보수 모두 당대 정치 질서에 얽매여 정책을 편다는 점이다. 뉴딜 질서는 민주당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때 힘을 얻었지만, 공화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도 유지됐다. 1953년부터 1960년까지 8년간 재임한 아이젠하워는 높은 세율을 이어가고, 케인스주의에 따라 재정 정책을 펼쳤다. 노조에도 우호적이었다.정부의 중요성을 아는 군인 출신이라는 까닭도 있지만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공산주의가 ‘다 같이 잘살자’는 말로 사람들을 회유하던 때였다. 자본주의 본산인 미국일지라도 정부가 뒤로 물러선 채 개인이 능력껏 알아서 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뉴딜 질서 몰락에는 내부의 모순과 한계, 공산주의 쇠퇴가 영향을 미쳤다. 때를 기다리며 이념을 갈고닦던 보수 이론가들 덕분에 신자유주의가 금방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번에도 좌우 진영은 지배적 정치 질서 아래에서 움직였다. 신자유주의가 정점을 찍은 것은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 때였다. 클린턴은 자유무역을 추구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서명했고,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을 지지했다. 각종 규제를 철폐했다. 월스트리트에 초거대 은행들이 탄생했고 새로운 금융상품이 우후죽순 생겨났다.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균열이 일어났다. 이라크 전쟁을 벌이며 국력을 낭비했다. 무분별한 규제 완화는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저자는 ‘기고만장’이라는 말로 이 시기를 표현했다. 책은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도 신자유주의 질서에 맞춰 움직였다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은 이 질서의 몰락을 뜻했다.

지배 질서가 사라진 시대에 정치는 극단으로 흐른다. 좌우 진영을 묶어주던 끈이 사라진 탓이다. 각 진영은 자신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정치에 철학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면, 단순히 표를 위해 포퓰리즘을 좇는 것처럼 보인다면 여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정치 질서가 세워지기까지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기본적으로 역사책이다. 어려운 정치 이론보다 실제 있었던 일을 서술한다. 지난 100년 동안 미국 정치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