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손님 없어요"…쇠락한 동대문 패션타운 C커머스에 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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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팬데믹 이후 침체기 지속…"하루 매출 10분의 1로 쪼그라들어"
2층 이상은 공실 수두룩…"중국 품질 좋아지면 동대문 무너져" 경고 "3층 올라가 봐. 거기는 싹 빠졌어! 싹"
한때 '패션의 성지'로 불리던 서울 중구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 지난 22일 찾은 한 쇼핑몰은 한적하다 못해 적막했다. 구경하는 손님이 워낙 없다 보니 상인들은 자리에 앉아 휴대전화만 들여다볼 뿐 어쩌다 지나가는 손님에게도 "보고 가세요"라는 흔한 호객행위조차 하지 않았다.
가게가 빠져나가 텅 빈 자리에 서서 심심함을 달래듯 얘기를 나누는 두 상인에게 말을 붙여보니 "우리도 마지못해 나와 있다"고 넋두리를 늘어놨다.
3층에 올라가 보라는 말에 발걸음을 옮겨보니 동대문 패션타운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얼마 걸어가지 않아 공실 40∼50개가 무더기로 몰려있는 구역이 나타났다.
매장 벽에는 오래전부터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은 듯한 낡은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있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옷을 입어보려던 손님들로 붐볐을 탈의실도 텅 빈 채 환희 불만 켜져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쇼핑몰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2층 이상으로 올라가니 손님들이 몰리는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자리조차 듬성듬성 비어있었다.
1층 손님이라고는 가족으로 보이는 중국인 세 명과 중년 여성 두 명 그리고 기자뿐이었다. 듣는 이도 없는데 시간마다 나오는 층별 안내 방송이 공허하게 상가에 울렸다.
190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호황기를 누린 동대문 패션타운의 쇠락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온라인 쇼핑몰 성장으로 젊은 층이 빠져나갔고, 시장을 지탱하던 중국인 관광객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과 코로나19 유행으로 발길을 뚝 끊으면서 하염없이 추락했다.
최근에는 '알테쉬'(알리·테무·쉬인)로 불리는 중국 플랫폼의 '초저가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중국 온라인 패션 쇼핑몰 쉬인(Shein)의 공세는 아직 미미하지만, 빠른 유행 반영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한국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쇼핑몰 1층에서 젊은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옷을 파는 30대 상인 김모씨는 알테쉬를 두고 "거기는 너무 싸다"고 울상을 지었다.
김씨는 "국내 제작 상품도 중국에서 카피(복제)해서 저렴하게 판매한다"며 "여기서 물건을 사서 가져가 놓고 그런 데서 비슷한 걸 4천원, 5천원에 팔고 있다고 환불해달라고 한 손님도 있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저희는 도매에서 물건을 떼오는데 알테쉬에서 파는 것들은 도매시장보다 싸다"며 "거기 가격이 너무 싸니 (시장 상인들을) 가격을 뻥튀기하는 사기꾼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제작 상품만 취급한다는 다른 상인은 "우리 옷은 10만원인데 다른 데서 7만원이라고 하는 손님이 있다.
그러면 거기서 사라고 해버린다"며 "우리는 원단이나 바느질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집 옷은 정장이어서 와서 입어보고 사는 고객이 많아 덜 하지만, 티셔츠 같은 '싼맛'(저렴한 가격)에 입는 옷들은 (알테쉬의) 영향이 있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실제 쇼핑몰은 잘나가던 20여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의 옷을 파는 가게보다 중장년층을 주 고객으로 한 가게들이 더 눈에 띄었다.
간간이 지나다니는 한국인 가운데 젊은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동대문에서 쇼핑몰을 옮겨가며 20년 정도 장사를 했다는 상인 오모씨는 "여기는 죄다 40·50·60대 주부들이지 젊은 애들은 다 인터넷 보고 산다"며 "파는 사람도 옛날에나 젊은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은 나이 먹은 사람들만 남았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매출도 과거 동대문 패션타운 전성기 때와 비교하면 적게는 3분의 1, 많게는 10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쇼핑몰 2층에서 옷 가게를 하는 김봉덕씨는 "20년 전에는 동대문이 사람들로 미어터졌다"며 "하루에 정말 잘될 때는 200만∼300만원씩 팔리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하루 20만∼30만원도 힘들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도매상한테도 예전에는 봉지째 쌓아놓고 팔았는데, 지금은 한번 물건을 가져가도 리오더(재주문)가 안 들어온다"며 "상황이 너무 안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쇼핑몰에서 옷 장사를 하는 강명선씨 역시 "10년 정도 장사를 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내려가고 있다"며 "하루 매출은 제일 잘 팔리던 때 100만원이었다면 지금은 10만원 수준"이라고 속상해했다. 동대문 패션타운 몰락은 소매상뿐만이 아니다.
도매상들 역시 중국 패션산업의 맹렬한 추격에 떨고 있다.
쉬인은 주로 개인들이 이용하지만, 중국 패션산업 파급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기도 하다.
지대식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 사무국장은 "아직 알테쉬 물건이 괜찮은 것도 있지만 실망스러운 것들이 많아 영향이 미미하다"며 "하지만 앞으로 품질이 좋아진다면 동대문 상권은 소매든 도매든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이미 중국 의류·잡화는 무서운 속도로 우리나라를 따라와 큰 차이가 없다"며 "중국 바이어(구매자)들도 이제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동대문이 살아남으려면 지금처럼 2만명의 소상공인이 각자도생해서는 승산이 없다"며 "정부가 개혁적인 수준으로 지원하든 대안을 마련하든 해야 이 시장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2층 이상은 공실 수두룩…"중국 품질 좋아지면 동대문 무너져" 경고 "3층 올라가 봐. 거기는 싹 빠졌어! 싹"
한때 '패션의 성지'로 불리던 서울 중구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 지난 22일 찾은 한 쇼핑몰은 한적하다 못해 적막했다. 구경하는 손님이 워낙 없다 보니 상인들은 자리에 앉아 휴대전화만 들여다볼 뿐 어쩌다 지나가는 손님에게도 "보고 가세요"라는 흔한 호객행위조차 하지 않았다.
가게가 빠져나가 텅 빈 자리에 서서 심심함을 달래듯 얘기를 나누는 두 상인에게 말을 붙여보니 "우리도 마지못해 나와 있다"고 넋두리를 늘어놨다.
3층에 올라가 보라는 말에 발걸음을 옮겨보니 동대문 패션타운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얼마 걸어가지 않아 공실 40∼50개가 무더기로 몰려있는 구역이 나타났다.
매장 벽에는 오래전부터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은 듯한 낡은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있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옷을 입어보려던 손님들로 붐볐을 탈의실도 텅 빈 채 환희 불만 켜져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쇼핑몰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2층 이상으로 올라가니 손님들이 몰리는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자리조차 듬성듬성 비어있었다.
1층 손님이라고는 가족으로 보이는 중국인 세 명과 중년 여성 두 명 그리고 기자뿐이었다. 듣는 이도 없는데 시간마다 나오는 층별 안내 방송이 공허하게 상가에 울렸다.
190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호황기를 누린 동대문 패션타운의 쇠락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온라인 쇼핑몰 성장으로 젊은 층이 빠져나갔고, 시장을 지탱하던 중국인 관광객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과 코로나19 유행으로 발길을 뚝 끊으면서 하염없이 추락했다.
최근에는 '알테쉬'(알리·테무·쉬인)로 불리는 중국 플랫폼의 '초저가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중국 온라인 패션 쇼핑몰 쉬인(Shein)의 공세는 아직 미미하지만, 빠른 유행 반영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한국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쇼핑몰 1층에서 젊은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옷을 파는 30대 상인 김모씨는 알테쉬를 두고 "거기는 너무 싸다"고 울상을 지었다.
김씨는 "국내 제작 상품도 중국에서 카피(복제)해서 저렴하게 판매한다"며 "여기서 물건을 사서 가져가 놓고 그런 데서 비슷한 걸 4천원, 5천원에 팔고 있다고 환불해달라고 한 손님도 있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저희는 도매에서 물건을 떼오는데 알테쉬에서 파는 것들은 도매시장보다 싸다"며 "거기 가격이 너무 싸니 (시장 상인들을) 가격을 뻥튀기하는 사기꾼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제작 상품만 취급한다는 다른 상인은 "우리 옷은 10만원인데 다른 데서 7만원이라고 하는 손님이 있다.
그러면 거기서 사라고 해버린다"며 "우리는 원단이나 바느질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집 옷은 정장이어서 와서 입어보고 사는 고객이 많아 덜 하지만, 티셔츠 같은 '싼맛'(저렴한 가격)에 입는 옷들은 (알테쉬의) 영향이 있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실제 쇼핑몰은 잘나가던 20여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의 옷을 파는 가게보다 중장년층을 주 고객으로 한 가게들이 더 눈에 띄었다.
간간이 지나다니는 한국인 가운데 젊은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동대문에서 쇼핑몰을 옮겨가며 20년 정도 장사를 했다는 상인 오모씨는 "여기는 죄다 40·50·60대 주부들이지 젊은 애들은 다 인터넷 보고 산다"며 "파는 사람도 옛날에나 젊은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은 나이 먹은 사람들만 남았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매출도 과거 동대문 패션타운 전성기 때와 비교하면 적게는 3분의 1, 많게는 10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쇼핑몰 2층에서 옷 가게를 하는 김봉덕씨는 "20년 전에는 동대문이 사람들로 미어터졌다"며 "하루에 정말 잘될 때는 200만∼300만원씩 팔리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하루 20만∼30만원도 힘들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도매상한테도 예전에는 봉지째 쌓아놓고 팔았는데, 지금은 한번 물건을 가져가도 리오더(재주문)가 안 들어온다"며 "상황이 너무 안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쇼핑몰에서 옷 장사를 하는 강명선씨 역시 "10년 정도 장사를 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내려가고 있다"며 "하루 매출은 제일 잘 팔리던 때 100만원이었다면 지금은 10만원 수준"이라고 속상해했다. 동대문 패션타운 몰락은 소매상뿐만이 아니다.
도매상들 역시 중국 패션산업의 맹렬한 추격에 떨고 있다.
쉬인은 주로 개인들이 이용하지만, 중국 패션산업 파급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기도 하다.
지대식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 사무국장은 "아직 알테쉬 물건이 괜찮은 것도 있지만 실망스러운 것들이 많아 영향이 미미하다"며 "하지만 앞으로 품질이 좋아진다면 동대문 상권은 소매든 도매든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이미 중국 의류·잡화는 무서운 속도로 우리나라를 따라와 큰 차이가 없다"며 "중국 바이어(구매자)들도 이제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동대문이 살아남으려면 지금처럼 2만명의 소상공인이 각자도생해서는 승산이 없다"며 "정부가 개혁적인 수준으로 지원하든 대안을 마련하든 해야 이 시장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