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시 합격 인재 떴다"…7급 젊은 공무원 등장에 난리 난 곳 [관가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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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공채로 들어가는 7급 'MZ' 공무원국내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 A씨는 얼마 전 신입 채용 절차를 진행하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정부 부처의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공무원 출신들이 낸 이력서가 눈에 띄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업들이 고위급 공무원을 임원으로 스카웃하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젊은 공무원 출신들이 사기업에 지원서를 넣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며 “최근 들어 MZ세대 공무원들의 이력서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정부 부처 3년 차 7급 공무원이 휴가를 내고 면접을 보러 와 회사 내부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채용시장 블루칩'
대기업 문 두드리는 MZ 공무원들
"중고 신입으로 지원, 부쩍 늘어"
채용 시장서 능력 검증된 우량주 대접
행시 수석도 스타트업으로
로스쿨·치의학전문대학원 인기
공무원 3명 중 1명 이직 고민
9급 공무원 경쟁률 32년 만에 최저
공직 사회를 떠나 민간 기업으로 향하는 MZ세대 공무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민간 기업보다 낮은 보수, 과도한 업무량, 경직된 조직 문화, 중앙부처의 세종시 이전 등이 겹치면서 20·30대 젊은 공무원들의 ‘탈(脫) 관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관가 떠나는 인재들
MZ세대 공무원들은 대기업 채용 시장에서 ‘우량주’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고시 통과 후 관료 사회에서 경력을 쌓아 우수함과 성실함은 일차적으로 검증된 인재라는 평가다.특히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등 기업을 관리·감독하는 규제 부처 출신 공무원들의 인기가 높다. 대기업 B사의 인사 담당자는 “전사적으로 올해 70명의 신입을 뽑았는데 이 중 두 명이 3~4년 차 중앙부처 공무원 출신”이라며 “본사 기획실에서는 기재부 출신을, 인사 노무 부서에서는 고용부 근로감독관 출신을 채용했다”고 설명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도 MZ세대 공무원들은 ‘블루칩’으로 통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서기관 출신인 C씨(행시 56회)는 네이버클라우드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지난달 공직을 떠났다. 지난해 중앙부처에서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D씨는 “동기들과 비교하면 업계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적응도 용이하고, 월급도 거의 2배 이상 올랐다”며 “사기업이 정부의 규제를 어떻게 해야 할 준수할 수 있는지 돕는 것도 보람돼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기준 7급 3호봉 공무원의 월급은 220만9000원이다. 웬만한 대기업의 신입으로 들어가도 훨씬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 MZ세대 공무원들의 진로는 대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말 국토부 산하 새만금개발청에선 5급 행정고시 토목직 수석 합격자 출신인 E 사무관이 스타트업으로 이직해 화제가 됐다. 기재부에선 저년차 사무관 4명이 한꺼번에 로스쿨과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공직을 떠나 내부가 술렁이기도 했다.
○시들해진 공무원 인기
전체 퇴직 공무원 중 ‘신규임용’ 공무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9년 3만7981명 중 6500명으로 17.1%였지만 2023년 5만7163명 중 1만3566명인 23.7%로 지속적인 증가세다. 연차별로 살펴보면 1~3년 차 공무원이 가장 많이 퇴직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1년 미만 연차의 공무원은 3020명, 1~3년 차 5629명, 3~5년 차는 4917명이 사직서를 냈다.MZ세대 공무원들이 공직을 떠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인사혁신처의 ‘2023년 공무원 총조사’에 따르면 ‘이직을 고민한다’는 응답자가 34.3%에 달했다. 이직을 고민하는 이유로는 낮은 급여 수준(51.2%)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어 과도한 업무량(9.8%), 경직된 조직문화(8.7%) 등이 뒤를 이었다. 취업 시장에서 공무원 인기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 채용시험의 경우 32년 만에 최저 경쟁률을 기록했다. 4749명을 선발하기로 한 시험에 10만3597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21.8 대 1이었다. 1992년 19.2 대 1을 기록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한 중앙부처 국장급 관계자는 “유능한 후배들이 기업이나 로스쿨로 떠나는 걸 보면 아쉽지만 그만큼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며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곽용희/박상용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