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W 이젠 스타트업] 동대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김현우 서울경제진흥원 대표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서울은 대한민국 산업지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글로벌 도시다. 모든 산업 분야 중 서울의 대표적인 산업을 꼽으라면 단연 뷰티·패션이 아닐까 싶다. 특히 패션산업에 있어서 동대문 일대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동대문 패션’이라는 단어를 캔버스 가운데 쓰고, 그 주변에 연관된 이미지나 단어를 하나하나 적어 넣으면 다양한 스토리보드가 펼쳐진다. 한국 근대사부터 현대의 노동운동, 그리고 6·25 전쟁 이후 한국 의류 도매의 역사가 나올 수도 있다. 나아가 러시아나 중국 등의 보따리상 출현부터 길거리 패션이라는 단어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한국 패션의 한 축이던 동대문 일대가 죽어가고 있다. 부품, 원단, 도매, 소매 모든 부문에서 예전 같은 활기가 사라지고 있다. 주변 건물 대부분은 공실률이 50%를 넘는다.

세계적 ‘패션 클러스터’ 동대문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동대문 일대를 예전만큼 찾지 않는다. 한때는 동대문 패션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과 온라인 쇼핑몰 창업이 왕성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을 거치면서, 인터넷 의류 플랫폼 비즈니스가 급성장하면서 동대문을 중심으로 하던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시간을 놓치면 ‘동대문 패션’이라는 단어는 아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

동대문처럼 반경 5㎞ 이내에 원단, 재료, 패턴, 완성복까지 원스톱으로 처리되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들다. 거기에다가 수준 높은 디자인까지 갖췄다. 중국 광저우를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패션 클러스터로 부를 만하다. 동대문의 시장 규모는 업계 추산 연 15조원으로, 2만5000여 개 점포가 밀집해 있다. 디자이너, 원단 공급자, 생산 공장 등 관련 업계 종사자 18만 명 이상이 이곳에서 활동한다. 세계적 브랜드 ‘자라’ 매장이 전 세계에 5700여 개가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자산을 이대로 고사시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돈을 퍼붓는다고 이런 클러스터가 형성되지 않는다. 역사와 지역적 특성, 관련 산업 발전이 맞물렸기에 가능했다.

테크 기반 새 패러다임 접목해야

동대문이 거듭나려면 패션산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접목해야 한다. 패션에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입히자는 것이다. 이런 테크 기반의 융복합 창의력은 패션 강국 이탈리아보다 테크 강국인 한국이 더 잘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미 이런 시도를 하는 스타트업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기존의 의류 생산 중견기업도 동참하고 있다. 그 결과, 의류 구매 활동의 모든 것이 데이터화되고 AI 로봇이 패턴 작업을 시작했다. 머지않아 옷을 일일이 입어보지 않아도 키오스크에서 옷을 착용했을 때 어울리는지 영상으로 확인하고 AI가 앞으로 유행할 색상을 예측하는 일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도전과 노력이 계속되면 대중적인 패션산업에서 한국이 세계 최고 자리를 차지할지 모른다.

그리고 동대문에 자리 잡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이런 차세대 패션산업의 메카가 돼야 한다. 그동안 DDP는 장소 대여 공간으로서 패션쇼가 열리는 것 외에는 패션산업과 관련해 딱히 역할이 없었다. 앞으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동대문 일대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선 매번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도 좋지만, 이미 잘하는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적 패러다임을 입혀서 고도화를 유도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 DDP에 첨단 패션 테크가 전시되고 젊은 세대 취향을 고려해 ‘밤’이 아닌 ‘낮’ 도매시장이 열리고, 이 모든 활동이 데이터화되는 생각을 해 본다.

의류생산 시설이 동남아시아로 이전한 것은 대량생산을 통한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인류는 점점 더 개인화 경향을 강하게 띨 것이다. 많은 사람이 패션을 이런 변화를 가장 먼저 반영하는 산업 분야로 꼽는다. 그렇게 되면 빅데이터와 첨단 AI 기술로 무장한 한국 패션이 주목받을 것이다. 각자가 원하는 디자인을 키오스크나 인터넷에서 한 번의 클릭으로 주문하면 동대문에서 맞춤형 원단과 재료로 완성품을 제작해 5시간 안에 손에 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프로세스가 가능한 곳은 전 세계에서 동대문이 유일할 수 있다. 동대문은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가보고 싶은 서울의 매력 포인트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