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도 길 잃을 판"…'미로' 같은 서울역 환승에 불만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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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에게 '미로' 같은 지하철 환승역27일 오전 8시께 서울역 경의중앙선 1번 출구는 출근하는 사람들의 인파로 북적였다. 승강장과 출구를 잇는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5m 넘는 줄이 이어졌다. 이곳에서 만난 박경식 씨(82)는 "경의중앙선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지인을 만나러 가는데 길을 못 찾아서 늦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역은 지하철 1호선·4호선·공항철도선·경의중앙선과 KTX 기차역이 교차하는 대표적인 환승역이다. 4호선에서 공항철도로 환승하는 구간은 255m, 1호선에서 공항철도로 환승하는 통로는 총 365m 거리다.지하철역에 환승 방법을 안내하는 장치가 부족해 노인들이 길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환승 거리가 길고 출구가 많은 환승역은 인지 능력이 저하된 고령층 승객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서울역 경의중앙선에서 타 노선으로 환승하려면 역사를 벗어나 외부로 이동해야 하는데, 별도의 유도선이나 픽토그램 등의 장치는 없다. 환승역 인근 파출소에도 지하철역에서 길을 잃은 노인에 대한 신고가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서울 충무파출소와 서울역파출소에는 지하철역 근처에서 배회하는 노인에 대한 신고가 하루에 몇 번 꼴로 접수된다고 한다.
젊은 시민들도 환승역에서는 길을 헤매기 일쑤다. 서울역으로 출퇴근하는 시민 허규리 씨(28)는 "매일 4호선에서 경의중앙선으로 갈아타는데 직장생활 초반에는 자주 길을 잃었다"며 "20·30대도 이곳에서 길을 찾기가 어려운데 노인들은 오죽하겠냐"고 말했다.서울교통공사는 일부 지하철역에 바닥 안내선인 '세이프로드'를 설치해 교통약자의 이용 편의성을 높였다. 그러나 '반쪽짜리 대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종로3가역(1·3·5호선)·동대문역사공원역(2·4·5호선)·가산디지털단지역(7호선) 3개 역에만 설치돼있을뿐더러 환승 경로가 아닌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경로만을 안내하기 때문이다.
공사 관계자는 "2022년 3000만원을 들여 일부 역사에 세이프로드를 설치했지만 추가 설치를 고민하기엔 예산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에서는 교통약자 맞춤형 길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동행맵' 앱을 지난달 17일 공개했다. 하지만 휴대전화 사용이 익숙지 않은 노인들이 사용하기에는 어려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하철역에서 길을 잃는 노인들은 인지 능력이 떨어져 앱을 사용할 줄 모르는 분들이 대다수"며 "유도등·유도선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복잡한 환승역에는 안내 인력을 배치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