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콜리'는 찬란함과 아름다움이라는 이진법으로 세상을 본다

[arte] 최승연의 뮤지컬 인물 열전
서울예술단
서울예술단의 신작 <천 개의 파랑>(2024)에는 로봇이 극중 인물로 등장한다. 주요 인물인 휴머노이드 로봇 기수 콜리 외에도 편의점 로봇 베티, 구조용 로봇 다르파, 맹인 안내 로봇과 안내 로봇, 청소 로봇 등 무대에 실제로 구현된 로봇들이 인간-배우와 함께 어우러진다.

물론 모든 로봇 인물들이 다 기계로 구현되지는 않는다. 콜리와 베티, 그러니까 ‘이름’이 주어진 이들은 연극적인 존재들이다. 콜리는 배우가 움직이는 퍼펫으로, 베티는 로봇 코스튬을 입은 배우로 형상화된다.
서울예술단의 신작 &lt;천 개의 파랑&gt; 공연 장면 / 사진 제공: 서울예술단
배우의 몸을 완전히 가리는 방식으로 디자인된 베티에 비해, 콜리는 퍼펫과 배우가 함께 움직이는 수행성 안에 존재한다. 콜리 퍼펫과 똑같이 분장한 배우(진호, 윤태호)가 퍼펫을 조종하면서 콜리의 ‘내면’을 연기하는 방식이다. 인물-콜리는 콜리 배우와 퍼펫 조종사 2명의 협업으로 완성된다. 뮤지컬 <라이온 킹>에서 활용한 일본 전통 인형극 분라쿠식 해법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콜리에게 인간-배우가 연기해야 할 ‘내면’이 있다는 극의 관점이다. 이것은 뮤지컬 <천 개의 파랑>이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다. 물론 이 관점은 천선란의 원작 소설에서부터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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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콜리

콜리는 로봇이지만, 직원의 실수로 누구보다 ‘인간적’인 로봇으로 탄생한다. 콜리에게 다른 칩이 끼워지는 바람에 그는 보통의 기수 로봇과 달리 인지 기능을 갖춘 ‘이상한 로봇’으로 완성된다. 그는 세상을 ‘찬란하다’는 단어로 처음 마주하는 ‘질문하는 존재’로 태어난다. 콜리는 우연히 천 개의 단어로 딥러닝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지만, 그 단어들로 모두 규정될 수 없는 내면이 자신 안에 있음을 인지한다. 그 언어 이전의 ‘느낌’은 콜리의 언어를 구성하는 알파와 오메가인 ‘찬란함’과 ‘아름다움’ 사이 어딘가에 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막 알게 된 아이처럼 끝없이 질문하며, 세상을 향해 언어와 감각을 확장한다.

그는 처음 마주하는 대상을 존재 자체로 느끼며 질문을 통해 대상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한다. 새로 만나는 모든 대상에게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 그 이유다. 따라서 콜리의 ‘인간적’인 자질은, 그가 가진 천 개의 단어로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흐리는 ‘확장성’ 안에서 만들어진다. 인간이 ‘인간적’이라는 개념을 ‘정감’ 혹은 ‘실수와 나약함’에 대응시키는 것과 조금 다르다. 극 초반 넘버 ‘천 개의 단어’는 이런 인간적인 콜리를 담백하지만 드라마틱한 멜로디로 담아내고 이는 공연의 첫인상을 만든다.


확장하는 콜리

콜리의 확장성은 먼저 말 투데이에 가서 닿는다. 무엇보다도 그는 휴머노이드 기수였기 때문이다. 그는 투데이를 ‘아름다움’으로 느낀다. 투데이의 아름다운 갈기, 투데이가 당근을 먹을 때의 경쾌한 근육의 움직임, 투데이가 달릴 때의 자유로운 느낌은 콜리에게 모두 ‘아름다움’으로 번역된다.콜리는 투데이와 함께하며 처음으로 ‘호흡’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다. 자신은 숨을 쉬지 않지만, 투데이가 질주할 때 느끼는 행복감을 공유하며 ‘숨을 쉬는 감각’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 감각은 콜리를 낙마하게 만든다. 그것은 투데이의 아픈 다리를 지키고 동시에 스스로 ‘살아있음의 감각’을 기억하려는 콜리 최초의 주체적인 선택이었다.
서울예술단의 신작 &lt;천 개의 파랑&gt; 공연 장면 / 사진 제공: 서울예술단
콜리의 확장성은 이후 연재네 가족에게 닿는다. 콜리는 낙마 이후 하반신을 잃지만, 연재네 가족을 만나며 더 큰 확장성을 갖는다. 연재는 ‘파란 하늘이 보고 싶어서 스스로 낙마했다’는 콜리가 이상했다. 그리고 그 ‘이상한 끌림’ 때문에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모은 자신의 전 재산을 콜리와 바꾼다. 이로써 폐기를 앞두고 있던 콜리는 구원을 얻는다. 연재는 그에게 ‘콜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콜리는 C-27이라는 시리얼 넘버 대신 ‘이름’으로 호명되는 존재가 된다. 콜리는 연재가 만들어 준 다리로 하반신까지 다시 얻는다.
서울예술단의 신작 &lt;천 개의 파랑&gt; 공연 장면 / 사진 제공: 서울예술단
콜리는 이번에도 연재네 가족을 ‘아름다움’의 눈으로 바라본다. 이런 콜리의 시각은 각자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던 연재네 가족을 변화시킨다. 보경은 소방관 남편을 사고로 잃었지만 떠나보내지 못해 항상 분주했고, 다리에 장애가 있는 언니 은혜는 항상 외로웠으며, 로봇 공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지만 언니를 의무적으로 돌봐야 했던 연재는 모두에게 냉담했다. 대상의 이름을 호명함으로써 대상에게 가까이 다가갔던 콜리는, 서로를 향한 ‘미안함’으로 굳어 있었던 연재 가족이 다시 가까워질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에 스며든다.
서울예술단의 신작 &lt;천 개의 파랑&gt; 공연 장면 / 사진 제공: 서울예술단

아름다움으로 완성된 콜리

하지만 콜리는 끝내 최초의 아름다움을 위해 또다시 낙마를 선택한다. 이로써 투데이는 안락사를 피하여 자연 속에서 살게 되었고 연재네 가족은 평화로운 일상을 찾는다. 콜리는 이 두 번째 주체적인 선택으로 영원히 사라지지만, 투데이와 연재 가족이 삶을 이어가는 모습에 자신의 ‘호흡’을 더함으로써 그들 곁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된다. 점차 천 개의 단어로 모두 표현할 수 없었던 콜리의 확장된 감각은 마지막 단어 ‘아름다움’ 안에서 이렇게 완성된다.
서울예술단의 신작 &lt;천 개의 파랑&gt; 공연 장면 / 사진 제공: 서울예술단
스스로 욕망이 없어 강압과 통제를 몰랐던 콜리는 현재 ‘인간이 AI와 관계 맺는 방식’과 ‘인간이 원하는 AI의 모습’을 동전의 양면처럼 보여준다. 소설보다 귀엽고 적극적이며 유연한 콜리는 한편으로 ‘내 말을 들어주는 감정적인 교류가 가능한 친구’의 개념을 완벽하게 낭만화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뮤지컬에서 AI 휴머노이드 캐릭터가 다양하게 모색될 때 아마도 콜리는 원형적 존재로 계속 살아 숨 쉬게 될 것이다.
서울예술단의 신작 &lt;천 개의 파랑&gt; 공연 장면 / 사진 제공: 서울예술단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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