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속가능성 공시, 규제 인식 맞지 않다

[한경ESG] 칼럼
김은경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실장. 사진=본인 제공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경제성장과 산업화는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라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이에 주요 국가에서는 환경 위기와 팬데믹 이후 경기침체를 타개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그린딜 정책’이라는 적극적 경제 부양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또 탈탄소화, 공급망 관리, 강제노동 방지 등을 위한 법규를 제정하고 있으며, 기업에 지속가능성 경영과 투명한 정보공개를 촉구하고 있다.이러한 흐름에 따라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호주 등 주요국에서는 지속가능성 공시기준과 제도를 발표하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이에 기업들은 지속가능성 공시를 통해 규제 준수 여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따라서 글로벌 지속가능성 경영과 공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에 신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다.

그러나 지속가능성 공시를 기업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로만 인식하는 것은 맞지 않다. 기업은 공시를 통해 직면한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 및 기회를 식별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기업이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 및 기회를 식별·관리하는 프로세스와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목표에 맞는 전략을 세워 이행하는지가 투자자가 알고자 하는 정보다. 스코프 3(총외부배출량), 기후 시나리오 분석, 예상 재무적 영향 공시는 핵심이 아니다.

이러한 공시는 기업이 기량과 역량에 맞게 과도한 원가와 노력을 들이지 않고 공시할 수 있다. 기업은 지속가능성 사안이 초래하는 위험을 미리 대비해 궁극적으로 미래성장동력을 확충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지속가능성은 이미 투자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으며, 의사결정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글로벌 금융회사, 투자은행, 신용평가사를 중심으로 상품 개발 및 투자 의사결정에 지속가능성이 적극 반영되고 있다. 이미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기금도 지속가능성을 투자 결정에 반영하고 있으며, 2022년 말 기준 총운용자산 중 지속가능성 투자 규모는 43%에 이른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자율적으로 지속가능성 관련 정보를 공시해왔다. 그럼에도 지속가능성 공시가 투자 의사결정에 적극 활용되지 못한 이유는 통일된 공시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 공시의 품질이 좋지 못해 기업·기관 간 비교가능성도 낮았다는 것이 투자자들의 의견이다.

국내 기업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경쟁력을 제고하고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이와 관련한 양질의 정보가 자본시장에 제공될 필요가 있다.이러한 국내외 상황에 발맞춰 회계기준원은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를 설립하고 한국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마련했다. 이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내용이 공개된 만큼 최종 기준의 공표 전까지 공개 초안 내용, 공시 시기, 공시 대상, 공시 위치 등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필요하다.

적용하기 어렵다는 막연한 의견보다는 무엇이 어렵고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국내 기업의 역량과 상황을 고려할 때 언제까지 준비할 수 있는지 등 구체적이고 건설적인 의견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기준원의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 초안에 대한 의견 수렴은 2024년 8월 31일까지다.

김은경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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