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작곡 서비스 보고 쓰러질 뻔했어, 빨리 이 판을 떠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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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임희윤의 팝 에포크“인공지능(AI)가 발달하면 예술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인간의 창작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인공지능과 만인의 벨에포크
며칠 전, 특강을 하기 위해 찾은 한 고등학교 교실. 질문을 위해 손든 학생은 이미 조금 근심 어린 표정이었다. 예술가를 꿈꾼다는 그 학생의 저 진지한 질문에 즉답하기 힘들었다. 생각을 가다듬으며 2, 3초는 뜸을 들여야 했다. 저들이야말로 AI와 함께 숨 쉬며 사는, 첫 세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린 인간과 살았지만, 저들은 AI와 산다. 저들의 아이는 인간의 아이뿐 아니라 AI라는 아이와도 친구가 돼야 할 것이다.’ 짧은 시간에 여러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어떻게 답했는지는 이 글 끝에….
좀 더 완벽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 데뷔 시점은 3분기로 조금 미뤄졌지만 그래서 맛보기로 2분기의 끝자락인 6월에 열리는 에스파 콘서트에 등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SMCU(SM 컬처 유니버스)의 세계관 속에서 마침내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 무대 위에 구현될지, 그것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현현될지 기대된다.
“우리 같이 찍은 사진이 없길래 대신 이 곡을 그냥 사진하자고. 우리 함께하는 이 순간을 담아서...”(사만다)
테오도르는 직접 지은 곡을 우쿨렐레로 연주하고, 이어폰 속 사만다는 거기 즉흥적으로 가사를 붙여 노래한다.
난 달에 누워 있다네
내 사랑, 곧 거기로 갈게
여긴 조용하고 별이 많은 곳
우주에 휩쓸려 우린
100만 마일이나 떨어져 있지만’ ‘알고 싶은 게 있어
너에게 숨기고픈 건 없어
어둡고 빛나는 곳이야
하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내 사랑
난 안전하고 우린 100만 마일 떨어져 있다네
후렴이나 변주도 없이 무뚝뚝하게 1절과 2절만 있는 1분 50초짜리 소품이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이 곡, ‘The Moon Song’은 그 울림이 만만찮은지 모른다. 마치 존재할 수 없는 스냅사진처럼, 유령과 함께한 공허한 셀카처럼 이 노래만은 언제까지나 우주공간을 맴돌고 있을 것만 같다.
“지금 베타 서비스 중인데 조용히 혼자만 들어가 보세요. 아직 거의 안 알려졌는데요. AI 작곡 서비스. 몇 곡 의뢰해 보고 저 쓰러질 뻔했거든요. 한 1, 2년 바짝 일하고 이 판을 떠야겠어요. 이런 게 상용화하면 저 같은 작곡가들은 정말 할 일이 없을 테니까요.”
반농담처럼 너털웃음을 지었지만, 그의 말을 성문 분석하면 농담은 10% 미만이 될 듯했다.
클래식 음악계는 어떻게 될까. 창작의 영역에서 AI와 인간의 협업은 상상을 뛰어넘는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말러의 ‘천인(千人)교향곡’을 넘는 ‘백만인교향곡’,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능가하는 ‘-(마이너스) 4분 33초’가 나오지 말란 법 있나.
대형 오케스트라의 미래는? 모르겠다. 지난 3월 두바이에서 제1회 AI영화제가 열렸는데 한국인이 대상을 탔다. 작품명은 <원 모어 펌킨>. 호박 농장을 운영하는 노부부가 어느 날 찾아온 저승사자에게 죽이는 호박죽 식사를 대접하면서 벌어지는 기상천외를 다룬 작품이다. 일체의 카메라, 제작 스태프 없이 무료 생성형 AI만 써서 단 5일 만에 만든 영화다. 관현악 단원들의 해석과 땀의 총합이 ‘배울 만큼 배운’ AI의 섬세한 연주로 대체된다면…?
1: “저같이 평범한 사람은 매일매일 연습하면서 진실하게 사는 게 중요한 것 같다”
2: “어느 날은 나방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치고 싶을 때도 있고, 어느 날은 페달을 10분의 1만 밟으면서 치고 싶을 때도 있다.”
1번의 사람을 ‘휴먼’으로 대체할 때, 2번의 무게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비가 쏟아붓던 날 조르주 상드를 그리며 건반을 더듬던 쇼팽처럼 ‘빗방울 전주곡’의 덥고 시린 감성은 AI가 따라오기에 당분간은 힘에 부치지 않을까.
“4000만 국민 가운데 영화감독은 100명이 될까 말까였던 시대. 그것이 지나고 AI의 힘을 빌려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오면 4000만 명 중 2000만 명이 영화감독이 되는 날이 도래하면 중요해지는 것? 영상을 찍는 기술이 아니겠죠. 질문하는 능력,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 아닐까요. 그리고 누구나 예술을 하는 시대는 두려운 미래, 끔찍한 디스토피아가 아니에요. 특별한 재능이나 환경이 뒷받침된 극소수만이 예술 창작을 독과점하던 구시대와 영영 작별하는, 진짜 예술의 파라다이스(또는 벨에포크)가 올지도 모르니까요.”
임희윤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