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 영화제는 '감독 없는' 한국 영화에 적신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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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7회 칸영화제 폐막77회 칸 영화제가 지난 25일 막을 내렸다. 영화제의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은 션 베이커의 <아노라>가 수상했다. 이로써 션 베이커는 2011년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 이후, 황금종려상을 받은 첫 미국감독이 되었다.
한국 영화 경쟁 섹션에 단 한편도 초청 못 받아
올해 칸 성적은 '낙제점'에 가까워
박찬욱·봉준호 뒤이을 감독 부재
▶▶[관련 기사] 사회적 소수자 다룬 작품들 올해 칸 영화제 수놓았다예년처럼 화려한 스타들과 출중한 작품들이 오고 간 칸영화제지만 올해의 영화제는 왠지 씁쓸하게 느껴진다. 한국영화가 단 한 편도 주요 부문, 즉 경쟁 부문에서 상영되지 못했다는 점과 비경쟁 섹션을 포함해도 (장편 기준) 고작 2편의 영화가 초청되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원래 ‘남의 나라 영화제’에 불과했던 칸영화제는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경쟁부문에 초청된 것을 필두로 2002년 <취화선> (임권택)의 감독상 수상, 그리고 바로 다음 해인 2003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의 그랑프리 (심사위원 대상) 수상으로 이어지며 더 이상 ‘남의 영화제’가 아닌 한국영화의 주요한 플랫폼이 되었다.
칸영화제는 상으로서의 영예뿐만 아니라 영화의 마케팅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컨대 <올드보이>의 칸 수상 이후, 영화는 미국 시장과 아시아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팬덤을 만들어 냈고, 이는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03), <장화, 홍련> (김지운, 2003) 과 같은 다른 출중한 한국영화들과 함께 이른바 'K-무비'의 초석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후 한국영화산업 내에서 부침이 있었음에도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한국영화가 칸에서 그리고 세계 시장에서 그간 지켜온 위상에 정점을 찍는 상징적인 이벤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는 존재했다. 오스카 수상까지 이어진 <기생충>의 기록적인 성공은 분명 문화의 영역을 넘어서는 큰 경사였다. 문제는 봉준호 이후 세대에서 봉준호·박찬욱 감독 만큼의 활약을 기대할 수 있는 한국영화감독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올해, 2024년 우려는 현실로 증명이 되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칸 영화제 경쟁 섹션에는 한국영화가 없었다. 적어도 작년 기준 4편의 한국영화가 경쟁 섹션은 아닐지라도 작가주의적 성향이 강한 ‘주목할 만한 시선’, ‘비평가 주간’ 등 작품적으로 중요한 그룹에 초청된 것에 반해 올해는 <베테랑 2> (류승완)가 미드나잇 스크리닝 (주로 상업적 요소가 강한 영화, 장르 영화를 상영), <영화 청년, 동호> (김량)가 칸 클래식에 선정되었을 뿐이다 (장편 기준). 조금 잔인하게 말하자면, 올해 칸에서는 주목하고 싶은 한국영화가 없었던 것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한국영화의 활약을 고려하면, 작년에 이은 올해의 칸 성적은 낙제에 가깝다. 비교적 비중이 큰 섹션에서 상영된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2> 역시 인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영화제 기간 동안 나온 리뷰 자체도 많지 않거니와, 스크린 데일리 (Screen Daily)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South China Morning Post)를 포함한 소수의 매체들이 '일반적인 시리즈 영화와는 다르게 전편을 망치지 않는 속편’ 정도의 호의적인 리뷰를 내놓았을 뿐이다.
“Unfortunately, some of I, The Executioner’s plotting can be pedestrian, and the previous film’s appealing supporting cast — such as Jang Yoon-ju’s resourceful Miss Bong — are not given prominent roles. (Additionally, the sequel’s eventual villain lacks some of the menace Yoo Ah-in supplied in Veteran.) But on the whole, this instalment is a confident step up from the original. I, The Executioner may have more on its mind, but not to the detriment of the bone-crushing escapism that defined the first chapter.”“안타깝게도 <베테랑 2>의 줄거리는 다소 평이하고, 장윤주의 재치 있는 미스 봉과 같은 전작의 매력적인 조연들이 눈에 띄는 역할을 맡지 못했다. (또한 속편의 악당은 전편에서 유아인이 보여준 위협적인 요소가 부족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번 속편은 전편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영화는 더 많은 것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1편을 해 정도는 아니다.” (스크린 데일리, 팀 그리어슨)
“Upping the stakes from the first instalment in nearly every department, I, the Executioner is a crowd-pleasing juggernaut that warns against the perils of populism, takes violence to task – and takes viewers on a white-knuckle roller coaster ride….With stunning set pieces, a well structured story, a relatable social issue at its centre and a couple of visual gags that pay tribute to Buster Keaton, I, the Executioner makes The Roundup franchise starring Ma Dong-seok looks like child’s play.”
“거의 모든 부문에서 1편보다 수준을 높인 <베테랑 2>는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폭력을 다루는, 관객 만족형 영화다... 화려한 세트, 잘 짜인 스토리, 공감 가는 사회적 이슈, 버스터 키튼의 오마주 등을 통해 영화는 마동석의 <범죄도시> 시리즈를 어린이 놀이 정도로 보이게 만든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클래런스 츠이) 물론 칸의 성적이 한국영화산업 전체를 대변한다고 할 수 없고, 한국영화의 절대적인 질적 평가가 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영화제가 이제껏 한국영화가 일궈낸 성장에 있어 중요한 지표가 되어왔다는 사실이다. 현재 한국영화에는 감독이 없다. 산업과 상품이 그럴 듯하게 쇼케이스 되어 있을 뿐이다. 이번 칸영화제에서의 한국영화 부재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염두에 두어야 할 적신호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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