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으로 집단 광기를 그리다…연극 ’활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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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활화산'
1974년 차범석 희곡 50년만에 공연

1부는 구습에 목매는 양반가문 비꼬는 블랙코미디
2부는 새마을운동과 집단광기 그리는 부조리극

서울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6월17일까지
극작가 차범석이 1974년 발표한 '활화산'은 정치적 선전극이었다. 1973년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모범사례로 꼽힌 김명순씨를 모티브로 삼았다. 무너져가는 양반 가문이 양돈업을 통해 재기하는 이야기로 구습을 비판하고 새마을운동 의식을 고취하고자 했다.

50년이 지나면서 '활화산'은 과거의 산물이 됐다.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나 발전을 이루자는 70년대의 메시지는 현대 관객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준다. 연출을 맡은 윤한솔은 극을 1부와 2부로 나눠 이 작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았다. 그것은 모순이다.
배경은 1960년대 말 경북의 어느 시골 마을. 1부에서는 허례허식을 포기하지 못하는 양반 가문이 쇠락해가는 모습을 그린다. 주인공 가족은 껍데기만 남은 종갓집이다. 무너져가는 기와집에 살지만, 학비가 없어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끼니조차 이웃에게 빌려 겨우 해결하며 버티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제사는 꼬박꼬박 챙기고, 아들이 손님을 데리고 오자 남에게 술과 닭을 꿔오면서까지 대접한다.
구습에 젖은 가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블랙코미디다. 변변찮은 직업도 없으면서 "남자 일에 간섭하지 말라"며 아내에게 큰 소리로 호통치는 상석. 빚을 지더라도 남편의 상은 무조건 삼년상으로 치러야 한다는 할머니까지.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면서 신랄하게 비꼰다. 와중에도 라디오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가 흘러나오며 이 가족이 얼마나 고립되고 뒤처졌는지 보여준다.
2부는 1부와 별개의 작품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질적이다. 1부가 양반 가문을 사실적으로 그린 블랙코미디였다면 2부는 비현실적인 연출로 집단 광기를 묘사하는 부조리극이다.무대에는 소형 트럭만 한 돼지 모형이 배우와 관객을 압도하듯 서 있다. 며느리가 가족을 일으키기 위해 양돈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60년대에 국가가 양돈업을 장려하며 토종돼지보다 몸집이 몇 배로 큰 해외 품종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돼지가 우렁찬 울음소리를 낼 때마다 무대가 흔들리듯 등장인물들이 나자빠지며 돼지를 경외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인물 간 권력관계도 반전된다. 한복을 입고 고분고분 허리를 숙이던 정숙은 초록색 작업복을 입고 머리는 자유롭게 풀어헤친 채 돼지 사료를 나른다. 반면 상석은 포대기를 두르고 정숙 대신 아기를 돌본다. 아이 옆에서도 담배 연기를 내뿜던 상석은 이제는 담배를 권유해도 아이 때문에 안된다며 거절한다. 정숙이 실질적인 가장이면서 권력자가 된다.
정숙은 전쟁으로 부서진 다리를 복구하는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마을 사람을 모은다. 정숙은 국회의원의 지원을 받지 말고 우리의 힘으로 해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연설이 이어지며 분위기가 고조되고 정숙의 언성도 높아진다. 정숙의 연설에 감격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양팔을 들고 그의 말을 복창한다. 무대는 섬뜩한 녹색으로 물들고 사람들은 광기에 사로잡힌 채 무대를 뛰쳐나간다.1부와 2부 구분이 없는 원작 희곡이 둘로 나눠지며 '활화산'이 지닌 모순이 두드러진다. 실제로 대중에게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극의 후반부가 돼지 모형과 초록 조명을 활용해 비현실적으로 묘사된 덕이다. 정치적 이념을 위해 집단을 하나의 이념으로 묶는 모습, 흑백 논리로 군중을 호도하는 정숙의 연설이 현대 관객의 시각에서는 또 다른 부조리다.

70년대의 다양한 사회상이 그림같이 담긴 작품. 시대 변화의 모순을 관찰하는 독특한 연극이다. 공연은 서울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6월17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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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