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센다이, 임윤찬이 연주한 모든 순간이 화양연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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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센다이필 협연 리뷰
5월24,25일 센다이 '히타치 시스템즈 홀'
청춘의 감성, 임윤찬의 쇼팽 협주곡 2번
센다이 필하모닉과의 아름다운 협연
타카세키 켄, 쇼팽 협주곡에 새 숨결을 불어넣다
전석 매진, 한국 팬들의 뜨거운 관심
브루크너 교향곡 9번으로 마무리된 공연
20세 청년 임윤찬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햇살이 모든 생명의 기운을 푸르게 가득 채운 5월 말.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의 센다이(仙台)에 위치한 히타치 시스템즈 홀 센다이 (Hitachi Systems Hall Sendai)에서 지휘자 ‘타카세키 켄 (高関 健)’이 이끄는 ‘센다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5월 24일, 25일 양일간 ‘쇼팽 피아노 협주곡 No. 2 in F Minor, Op. 21 (이하: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했다.청춘을 계절에 덧댄다면, 아마 이즈음일 텐데. 구릉성 산지와 목초지로 둘러싸인 센다이는 신록이 만연했고, 선선한 바람도 불어, 19~20살 즈음 청년 ‘쇼팽’이 작곡했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많이 알려진 대로 이 곡은 쇼팽이 짝사랑했던 ‘콘스탄치아 글라드코브스카 (Konstancja Gladkowska)’를 향한 애절한 감정을 오선지에 써 내려간 곡이다. 쇼팽은 이 곡을 ‘피아노 협주곡 1번’보다 먼저 작곡했지만, 출판 순서를 미루어 2번으로 정했다. 곡이 완성될 당시 쇼팽은 고국인 폴란드의 붕괴를 경험했고, 파리로 이주했으며, 고백도 못 했던 짝사랑과 이별했다. 여기에, 음악적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줄 리스트도 만났다. 다사다난한 20대 초반을 보낸 쇼팽의 이야기들은 ‘피아노 협주곡 2번’ 감상에 신비성과 탐미성을 더했다.
풋풋하고, 애절한 감정이 충만했던 스무살의 ‘쇼팽’의 절대적인 나이만을 감안했을 때, 스무살 청년 임윤찬이 연주하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근사한 평행이론 같았다.
800석 규모의 공연장, 약 20%는 한국 관객
공연장 ‘히타치 시스템 홀 센다이’는 관객 800석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고, 양일 전석 매진이었다. 더욱이, 일본 주변부에 있는 이 아담한 공연장의 카페, 대기홀에 한국 관객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어 그곳이 일본이라는 점을 잠시 잊게 해줬다는 점이다. 공연장 도우미에게 슬쩍 물어보니, 2일 공연 동안 객석의 약 20% 정도가 한국 관객이라고 했다.한국에서는 임윤찬 공연 예매가 하늘의 별 따기니, 그의 연주를 직접 느끼고 싶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2시간 정도의 비행기 타는 수고는 일도 아니었을 터. 약 320여명의 관객은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이 시작되고, 공연장 중앙에 임윤찬이 연주하게 될 스테인웨이 앤 선즈社의 그랜드 피아노와 그 주변을 둘러싼 오케스트라 좌석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철과 돌로 마감한 무대 중앙부는 섬세한 소리를 단단하게 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 더욱 기대가 되었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리에서 임윤찬의 연주를 몸과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공연이 시작되기 전 지휘자 ‘타카세키 켄’이 무대로 올라왔다.“임윤찬과 만나기 전에 오케스트라가 연습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임윤찬과 만나 리허설을 한 후 매번 새롭게 달라졌습니다. 아마, 오늘 협연도 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대개 공연 직전에는 단원들이 올라와 막판 조율과 연습에 열을 올렸던 게 일반적인 모습이었는데, 지휘자가 직접 올라와 임윤찬과 리허설 도중에 있었던 에피소드와 함께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브루크너 교향곡 9번’에 대한 해석, 선택한 악보 에디션에 대한 이야기로 관객들과 사전 소통하는 모습은 공연장의 분위기를 좀 더 포근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지휘자 타카세키 켄
초정밀과 초월적 아름다움 표현
1악장 제 1 바이올린이 F-A♭-B♭-C 음으로 도입부의 시작을 알리고, 비올라와 트롬본, 플룻 오보에가 악기의 층위를 쌓아갔다. 임윤찬은 홀을 가득 채우며 사방으로 발산하던 모든 악기들을 자신의 피아노로 초대했다. 1악장 피아노의 시작 포르티시모 D♭. 임윤찬은 자신의 건반을 시냇물을 스치는 산들바람처럼 흘러가듯 연주하면서도 작은 음 하나도 흐릿함 없는 아티큘레이션을 들려줬다. 최대 속력으로 달음질하는 슈퍼카처럼 폭발하는 에너지로 절정에 치달은 임윤찬은 정확한 브레이크로 음악의 선과 맵시를 살렸다.1악장의 달아오른 기운을 달래주듯 2악장은 차분한 뉘앙스로 청명하고, 아름다운 소리의 결정체를 들려줬다. 초정밀과 초월적 아름다움을 소리로 표현할 수 있다면, 임윤찬이 연주했던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일 것이다. 이 고운 소리의 융단을 3악장이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임윤찬에게 생명력이 움트는 젊음의 에너지와 오랜 수행을 거친 수도자의 기운이 동시에 느껴졌다. 어린 시절부터 쳤던 곡이라서 그런지, 여유도 넘치면서, 포르테시모와 피아니시모 사이를 넘나드는 음력의 작용 반작용은 가히 숨 막힐 지경이었다. 해 질 녘 윤슬같이 휘황찬란함이 맑은 불꽃으로 ‘창조’되어 관객석을 촉촉하고 뜨겁게 물들인 2악장·3악장이었다. ‘임윤찬’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직접 경험하기 전에 수많은 연주자들의 버전을 듣고 공연장을 찾았건만, ‘임윤찬’은 수많은 피아노 연주자들 중 가히 독보적인 영역에 존재하는 예술가였다.
첫째 날 앙코르는 차이코프스키 사계 중 6월을 연주했는데, 쇼팽으로 쌓은 아름다운 시간들이 차이코프스키로 연마되었다. 임윤찬이 연주한 모든 순간이 화양연화였다.
둘째 날 임윤찬은 앙코르로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연주했고, 재기발랄하고 행복한 순간으로 센다이 공연 일정을 마무리했다.
덧붙임. 센다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브크너 교향곡 No.9 in D minor’
임윤찬의 연주가 끝나고, 협연한 센다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안톤 브루크너’의 마지막 교향곡 9번을 공연했다. 이 곡은 브루크너가 죽음을 앞두고, 신에 대한 찬미로 만든 교향곡이며, 생전에 3악장까지 만들어졌고, 4악장은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다. 대곡의 편성인지라 오케스트라와 공연장의 크기가 좀 더 컸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남았지만, 임윤찬의 여운을 신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리는데 충분한 래퍼토리였다.지휘자 ‘타카세키 켄’은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 곡을 선정하였다고 했다. 만약 관객들이 기회가 된다면, 지금은 타계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2013년 8월 26일 75회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버전을 들어보길 추천한다. 카라얀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현재를 만들어 놓은 클라우디아 아바도가 죽음을 얼마 남기지 않고 마지막으로 레코딩한 버전은 아마도 브루크너가 이 곡을 작곡할 당시의 감정과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연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 공연장소 : 히타치 시스템즈 홀 센다이
- 피아니스트 : 임윤찬
- 지휘자/관현악단 : 타카세키 켄/ 센다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시기 및 프로그램 :
5/24 쇼팽 피아노 협주곡 No. 2 in F Minor, Op. 21
Encore 차이코프스키 사계 Op. 37 中 6월
브루크너 교향곡 No. 9 in D minor
5/25 쇼팽 피아노협주곡 No. 2 in F Minor, Op. 21
Encore C.엘가 사랑의 인사 (Salut d'amour)
브루크너 교향곡 No. 9 in D minor글 | 이진섭
고객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기차 서비스를 개발하고, 기획하는 일을 합니다. 네이버캐스트 [팝의 역사]를 연재했고, 음악 에세이 [살면서 꼭한번 아이슬란드]도 출판했습니다. 음악과 미술로 여행하고, 탐미하며, 가치를 발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