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포퓰리즘으로부터 자유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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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영합주의는 독재처럼포퓰리즘은 현대 민주주의의 결함 내지는 부작용이다. 성숙한 서구 사회에서도 흔한 현상이니, 독재보다 현대적인 문제로 보인다. 즉 정치가 국민의 분노와 시기, 질투와 같은 감정과 집단심리를 조작·증폭·확산시켜 편 나누기를 도모해 거짓을 확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갈기갈기 나뉜 각 편은 상대편에게 거의 폭력에 준하는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팬덤정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게다가 관료 등 공공부문이 정보 통제와 이해집단과의 연합을 통해 이런 상황에 편승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일찍이 조지 오웰은 독재는 거짓과 폭력으로 존재한다고 했다. 포퓰리즘도 이와 유사해 놀랍다.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다. 한국 포퓰리즘의 원인과 대처 방법을 제도 차원에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거짓과 폭력으로 자유를 탄압
진실과 비폭력에 기반한 자유는
정확한 지식과 정보가 필수적
권리 제약하는 규제 본질은 폭력
규제개혁과 재정 투명성 힘써야
김태윤 한양대 정책과학대학 교수
자유는 독재의 반대말이다. 진실과 비폭력을 전제한다. 진실의 핵심은 지식과 정보의 정확성에 있다. 다양하지만 나름 타당한 정보가 자유롭게 이동하고 쉽게 눈에 띄어야 한다. 즉, 투명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투명성은 객관적 분석과 공개, 그리고 참여로서 가능해진다. 복잡한 사회 사안이 문제가 됐을 때 그 사안이 복잡한 만큼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다. 다양한 관점을 각각에 적합한 지식과 분석으로 파악하고 해설하며 전망하면 된다. 이렇게 해서 다양함은 다름으로 환원되고 다른 관점을 가진 집단도 차분하고 과학적으로 토론할 수 있게 된다. 토론의 결과가 타협이든 양보든 통합이든 상관없다. 이렇게 지식과 정보의 분석과 공개 그리고 참여가 있어야 진실의 어슴푸레한 모습을 대중과 사회가 파악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말은 많고 싸움은 격해지지만 합당한 토론이나 협의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요즘 많은 국민을 안타깝게 하는 의대 정원 문제가 딱 이런 함정에 빠진 것이다.폭력과 관련해 현재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규제와 재정이다. 규제는 국민의 권리를 제약하고 특정한 행위를 강요하기에 그 본질은 폭력이다. 따라서 자유를 증진하려면 규제를 완화하거나 철폐하거나 또는 지금보다 더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가 재개정하는 대부분의 입법은 계속해서 규제를 늘린다. 또한 정부 부처와 수많은 공공부문은 지속해서 규제의 수를 늘리고 얼렁뚱땅 현행 규제의 강도를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시민들의 삶에서 자율성과 자발성이 창발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국내에서 보였던 수없이 많은 발랄한 아이디어와 발상들이 십수 년이 지난 뒤에 미국 등 선진국에서 지배적인 디지털 서비스, 소프트웨어의 기본 개념으로 뿌리내린 것을 우리 국민은 수없이 목격했고 허탈해했다.
한편 규제가 국민의 재산권을 제약해서 그 재산이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니 당연히 주식시장은 지속적인 저평가 상태에 머무르고 있고, 기업 투자도 답보 상태에 처해 있다. 문제는 규제개혁과 관련된 수많은 멋진 제도들은 그저 서류상으로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 실효성 있게 집행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재정도 마찬가지다. 통계를 잘못 보면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과세율이 꽤 낮은 것으로 돼 있다. 4대 보험 등 수없이 많은 준조세와 그보다도 더 많은 각종 분담금, 회비와 같은 부담을 간과해서 그렇다. 현실은 유럽 국가에 비해도 우리 국민은 자기가 번 소득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국가에 내고 있다.
그간 이에 대한 저항이 그리 높지 않았던 것은 국가에 대한 순종과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믿음과 기대는 급격히 흔들리고 순종도 메말라 가고 있다. 정부가 구태의연한 많은 낭비를 초래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재정건전성과 관련된 많은 제도들을 재정당국이 얼렁뚱땅 무시하거나 모르는 척하고 있고, 정치권이 나서서 얼토당토않은 사업에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것도 대다수 국민은 못마땅해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을 자유의 길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 스스로 투명성을 갖추기 위해 절치부심 노력해야 한다. 또 규제개혁과 재정건전성이라는 국민에 대한 존중을 지속해서 지켜나가야 한다. 대단한 변혁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기존 제도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