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손길 닿아있는 채색 석판화…절규 넘어서는 '판화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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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더 스크림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세계적인 명화들을 언제든 최고 화질로 감상할 수 있는 이 시대에도, 원화(原畵)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은 분명히 존재한다. 미술 애호가들이 명화 한 점을 보기 위해 기꺼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유다. ‘복제품’인 판화 위주의 전시가 찬밥 취급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뭉크의 방대한 작품 세계 살펴
키스·뱀파이어 등 원화도 전시
하지만 지금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바르 뭉크 : 비욘드 더 스크림’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출품작 140여점 중 절반 이상이 판화인데도 미술계 인사 대부분의 호평을 받고 있다. 에드바르 뭉크(1863~1944)라는 작가의 특성, 뭉크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두루 살필 수 있는 짜임새 덕분이다.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뭉크는 생전 자신 대표작들을 색채와 모양만 조금씩 바꿔 가며 반복해서 그리곤 했다. 다양한 재료와 표현 방식을 통해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작품인 ‘절규’만 해도 원화로 취급받는 작품이 다섯 개가 넘을 정도다. 이런 뭉크의 실험은 판화를 찍어낼 때도 계속됐다. 그는 석판화 인쇄물에 직접 색을 칠해 각 작품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판화지만 작가의 손길이 직접 닿았다는 점에서 원화의 성격도 띠고 있다. 뭉크의 ‘채색 석판화’가 일반적인 판화보다 한 단계 높은 취급을 받는 이유다.‘절규’를 비롯해 전시장에 나온 뭉크의 대표작 중 상당수는 이렇게 제작된 채색 석판화다. 원화의 감동에는 못 미치더라도, 거장의 손길을 느끼고 작품 세계를 감상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게 미술계 인사들의 평가다. 여기에 더해 주최 측은 ‘마돈나’, ‘뱀파이어’ 등 뭉크 대표작들의 판화를 한데 모아 각 판본의 차이점을 찬찬히 뜯어볼 수 있게 전시를 구성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다른 그림 찾기’ 하듯 서로 비슷한 판화들의 세부를 눈여겨보며 뭉크의 작품을 깊이 탐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전시가 판화 일색인 건 아니다. 눈여겨볼 만 한 원화도 적지 않다. 전시장 초입의 '자화상'(1882~1883년)을 비롯해 '키스'(1892), '달빛 속 사이프러스'(1892), 파스텔과 크레용으로 그린 '뱀파이어'(1895), '키스'(1921) 등을 주목할 만하다.140점 넘는 작품 수량 덕분에 뭉크의 긴 생애(71년)와 작품세계 전체를 빠짐없이 한 번에 살펴볼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전시다. 뭉크의 작품세계를 깊이 알고 싶은 미술 애호가라면 놓치기 아까운 기회다. 다만 ‘유명한 그림의 원화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전시장을 찾는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비슷한 그림들의 차이점을 천천히 비교하며 감상해야 하는 전시 특성상, 사람이 지나치게 몰리면 감상 만족도가 낮아질 수도 있다. 전시는 9월 19일까지, 월요일은 휴무. 관람료는 성인 기준 2만원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