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보물선 인양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 사이의 카리브해는 과거 악명 높은 해적의 무대였지만 보물선의 바다이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난파선이 바닷속에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문화부는 2019년 자국에 소유권이 있다며 681척의 난파선 목록을 작성했다. 이 난파선들은 모두 1492년에서 1898년 사이에 아메리카 대륙 근처에서 침몰한 것들이다. 대부분 스페인 제국이 식민지인 중남미에서 수탈한 금과 은을 가득 실은 보물선이다. 스페인이 여전히 카리브해에서 눈을 떼지 못 하는 이유다.

한국에도 보물선의 바다는 있다. 서해의 난파선에선 금·은 대신 청자·백자가 쏟아져 나왔다. 값어치로 따지면 귀금속 못지않은 보물들이다. 금과 관련된 보물선 얘기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개 “금괴를 싣고 가다 침몰한 일본 배의 위치를 안다. 자금을 투자하면 일부를 주겠다”는 식의 사기극으로 끝났다. 2000년엔 보물선 소동이 증시를 흔들기도 했다.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근해에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 얘기다. 돈스코이에 150조원어치 금괴가 실려 있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음에도 동아건설 주가는 침몰 위치 확인 소식만으로 17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돈스코이는 2018년 가짜 암호화폐를 내세운 사기 사건에 다시 등장했다. 있을지 없을지 모를 바닷속 보물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이 재산을 날리고 눈물을 흘렸다.콜롬비아가 300여 년간 카리브해에 잠들어 있던 ‘전설의 보물선’ 산호세호 인양에 나섰다. 1708년 콜롬비아 앞바다에서 영국 함선의 공격에 침몰한 산호세에는 금과 은, 에메랄드 등 200억달러(약 27조2700억원)어치 보물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인양 회사가 1981년 처음 발견한 뒤 40년 넘게 스페인, 볼리비아 원주민 등과 소유권을 둘러싼 신경전이 펼쳐졌다. 고고학자들은 인양 과정에서 역사적 유물이 파괴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 이 보물들을 끌어 올리고 싶은 모양이다. 누구의 소유가 됐든 이 유물들은 세계인의 보물이다.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멀면 곤란하지 않을까.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