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이노베이션 나선 중견기업…2차전지 등 신산업 생태계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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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보공업 계열 선보엔젤파트너스음극재 소재 스타트업이 양극재, 전고체 관련 스타트업과 공동으로 소재 개발을 한다. 여기에는 리튬에서 생기는 덴드라이트(결정)를 억제하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함께 참여한다. 이 관계망 속의 개별 기업들은 양극재와 음극재 등의 소재를 배터리나 모빌리티 기업에 공급한다. 2차전지 재활용 기업으로부터 소재를 공급받기도 한다.
지역 기업 네트워크의 중심 역할
2차전지·항공·우주 스타트업 발굴
스타트업이 주축이 되는 이 관계망 속에는 지역 중견급 제조기업이 다수 포함돼 있다. 화학소재 저장 인프라를 운영 중인 기업부터 도료, 전기버스 운송업, 화학소재, 조선기자재 등 업종도 다양하다. 그동안 부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산업군인 2차전지 생태계(소재, 배터리, 모빌리티, 리사이클링)가 이미 조성된 셈이다.
○막 오른 부산 2차전지 생태계
이런 관계망이 갖춰진 데는 부산지역 조선기자재 기업 선보공업 계열사 선보엔젤파트너스의 역할이 컸다. 선보공업은 선박 모듈 유닛 부문을 시작으로 친환경 연료추진시스템과 탄소 포집 등 그린 에너지 솔루션을 개발 중인 기업이다. 선보엔젤파트너스는 지역 제조업 혁신에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도입하기 위해 2016년 설립됐다. 선보공업의 2세 경영인 최영찬 대표는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산업을 연구해 핵심 키워드를 도출한 결과 2차전지, 그린에너지, 수소, 전기차, 통신, 충전시스템 등으로 나타났다”며 “이 분야에 중점적으로 투자하면서 지역 기업 네트워크를 연결했다”고 설명했다.현재 선보엔젤파트너스와 연결된 중견기업은 △조선 △자동차 △화학 △철강 △인프라 △메디컬 분야 22곳이다. 선보엔젤파트너스는 575억원 규모의 14개 펀드를 운용 중이며, 중견기업을 주주로 참여시킨 VC 라이트하우스컴바인인베스트를 2017년 설립해 AUM(운용자산) 2058억원을 달성했다.
최 대표는 선보엔젤파트너스를 통해 지역 제조업에 끊임없이 신사업 아이템을 제안해왔다. 그 결과 7개 제조업이 선보엔젤파트너스가 발굴한 스타트업을 검토해 투자하거나 조인트 벤처를 설립했다.조광페인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조광페인트는 △촉매 △친환경 도금 △전도성 고분자 등 3개 분야에 투자해 별도의 법인을 설립했다. 개념 실증(PoC)으로 기술과 사업을 협업하는 스타트업까지 포함하면 11곳에 이른다. 조광페인트는 이런 노력으로 2차전지 분야 방열 접착제 기술을 개발해 미국과 헝가리에 공장을 설립해 가동을 눈앞에 두고 있다. 조광페인트 관계자는 “2차전지 관련 기술 개발과 함께 반도체 소재와 바이오매스 기반 수지에 대한 투자처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 먹거리는 우주·로봇”
선보엔젤파트너스의 다음 투자처는 항공, 로봇 분야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관련 분야에 5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저궤도 위성 파악을 위한 안테나 기술을 가진 기업이나 무중력 상태를 활용한 제약 기술, 로켓 발사체 등 다양한 항공 분야 스타트업을 발굴했다. 무인 물류 주차 로봇을 비롯해 3~4 자유도 협동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을 결합한 스타트업에도 투자했다. 최 대표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은 안정적 제조라인이 필요하다”며 “2차전지 분야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생태계를 만든 것처럼 앞으로는 항공·로봇 분야에서 지역 제조업과 스타트업과의 협업이 일어나는 사례가 늘 것”이라고 밝혔다.지역 중견기업 기성전선은 자회사 설립으로 로봇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최 대표는 “업력 50년의 범용 케이블 국내 1위 중견기업인 기성전선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고부가가치 케이블 시장에 진입했다”며 “설립 5년 만에 상당한 수준의 매출을 쌓아 올렸다”고 설명했다.기성전선은 기계, 산업, 가전용 전선을 만드는 업체다. 국내 점유율 1위 업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관련 산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부가가치 사업 찾기에 나섰다. 기성전선의 선택은 초고압 케이블과 데이터 송수신용 케이블, 나아가 로봇 케이블에 진출하는 것이다. 기존 기술과의 연관성이 높아 기술 개발 후 빠르게 시장을 확대해 나갔다.
최 대표는 “기성전선은 로봇 시장에 특화해 진입한 사례”라며 “신사업 발굴, 스타트업 연계, 기술이전 등 다양한 정보를 라운드 테이블을 통해 지역 중견기업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민건태 기자 mink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