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 도시 부산…혁신 키워드는 '금융'

부산지역 스타트업 맵시의 시야는 전 세계 해역에 퍼져 있다. 스마트폰에 깔린 내비게이션 앱으로 실시간 최적 경로를 안내받는 자동차 운전자처럼 항해사들은 태블릿으로 맵시가 개발한 앱을 보며 항해할 수 있게 됐다. 육안 항해보다 훨씬 안전하다.

맵시는 인공위성 등으로 전 세계의 해상을 오가는 선박 데이터를 확보했다. 위치 기반의 맵에는 선박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반영된다. 맵시의 목표는 내비게이션을 통해 개별 선박의 구체적인 운항 데이터를 끌어모으는 것이다. 여기에는 특정 해역과 조류, 기상 상황 등 항해 외부 변수부터 속도와 이에 기반한 엔진 가동 추론 데이터 등 다양하면서 세밀한 데이터가 포함된다. 이렇게 되면 해운업을 중심으로 유럽연합(EU)에서 본격적인 규제에 들어가는 탄소배출권 시장 공략도 가능하다. 선박의 탄소 배출량을 정확하게 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의 전통산업(조선·해양)의 축적된 경험을 활용해 탄생한 스타트업이 미래산업(금융)으로 진출하는 사례다.
금융회사와 핀테크, 블록체인 관련 스타트업이 집중된 부산 남구 문현금융단지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전경. 부산시 제공

●제조 혁신, 2차전지 생태계 전환

부산시가 지역 금융·창업 생태계 덩치 키우기에 나섰다. 맵시처럼 지역 자원을 잘 활용한 스타트업이 등장해 좀처럼 민간 차원에서 일어나지 않던 새로운 형태의 산업 생태계가 조성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조선기자재 기업을 주축으로 한 중견·중소 제조업들도 국제적인 친환경 규제를 타고 친환경 설비 영역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활용해 외부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는 평가다. 지역 조선기자재 중견 기업 선보공업의 파트너사 선보엔젤파트너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부산 기반의 액셀러레이터 선보엔젤파트너스는 지역 중견 제조업에 끊임없이 신사업 아이템을 제안하고 조인트벤처 설립을 유도했다. 2016년부터 꾸준히 투자해온 2차전지 분야의 국내외 스타트업은 이미 선보엔젤파트너스를 주축으로 맺어진 ‘중견기업 동맹’과 탄탄한 공급망을 형성하며 지역에 없던 새로운 산업을 일으켰다. 선보엔젤파트너스는 지역 제조업의 미래가 항공·우주 분야와 로봇에 있다고 보고 관련 투자를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지난달 부산시가 연 기술창업 인증서 수여식. 부산시 제공

●제조 성장 키워드는 금융 정책

부산시는 지역에 열린 제조 혁신 생태계를 발판 삼아 금융·창업 정책을 대대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우선 창업 인프라를 대폭 강화한다. 투자 중심의 창업 정책(부산기술창업투자원, 지역 혁신 펀드, 스타트업 파크)으로 제조업을 포함한 지역 산업 전반에 혁신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의지다. 특히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동남권의 주력 산업인 제조업에 잘 정비된 금융산업을 결합하면 상당한 시너지를 낼 것으로 부산시는 보고 있다.정부가 추진 중인 기회발전특구에 대해 부산시는 1호 정책으로 금융을 앞세웠다. 정부가 지방 이전 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담을 전망이어서 부산시는 금융 관련 대기업을 부산으로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이미 BNK자산운용 등 다수 기업이 부산 남구 문현금융단지 입주를 결정했다. 시는 문현금융단지부터 부산항 북항에 이르는 공간을 부산에 특화한 금융산업 클러스터로 조성할 예정이다. 디지털 금융, 해양·파생 금융 집적지로 만든다. 여기에 핀테크, 블록체인 등의 투자 생태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지역 혁신 활동은 해외로 뻗쳐나갈 전망이다. 2022년 아시아권 대표 창업 엑스포를 목표로 출범한 ‘플라이 아시아’는 이미 해외 연결망을 탄탄하게 다져나가고 있다. 부산시는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 등으로 창업 영토를 확장 중이다.

●금융 생태계 본격 전환

디지털 전환을 주축으로 한 민간 금융 생태계의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BNK금융을 중심으로 부산은행 등은 디지털 전환 조직을 강화하고 데이터 수집과 활용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BNK금융은 2016년 모바일 뱅킹 사업을 시작으로 펼친 비대면 채널 경쟁력을 높이고 여행, 엔터테인먼트 등 비금융 기업과의 제휴를 강화하며 금융 데이터와 비금융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수집했다. BNK금융에 따르면 디지털 여신 잔액과 수신 잔액은 2020년 각각 1조7700억원, 2조8200억원에서 지난해 12월 5조1600억원, 9조7700억원으로 불어났다. 이 기간 모바일 이용 고객은 280만여 명에서 415만여 명으로 증가했다.최근에는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시민플랫폼을 개발해 운영에 들어갔으며, 부산시가 추진 중인 데이터 플랫폼에 금융 데이터를 제공하는 등 인공지능(AI) 생태계 구축을 지원할 계획이다. BNK벤처투자를 주축으로 전 계열사와 스타트업 간 연계 사업도 본궤도에 올랐다. 잠재적 고객의 생활정보, 즉 비금융 데이터가 금융 데이터와 결합하면 많은 가능성이 열린다고 봤기 때문이다. 결제 등의 핀테크 관련 기술뿐 아니라 공유 미용실 등 다양한 형태의 스타트업 발굴에 BNK금융이 앞장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거래소는 ‘부산화’에 시동을 걸었다. 디지털 전환 생태계를 육성하고 파생 금융 관련 제도를 부산을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정비할 방침이다. 부산시는 산업은행을 비롯해 금융, 해양·수산, 영화·영상 이전 시 시너지가 큰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유치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경쟁력 있는 부지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인공지능 등 디지털 전환 기술이 등장하면서 지역 주력산업인 제조업을 포함한 해양·수산 분야의 기업까지 기존의 틀을 깨는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며 “제조업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공할 해법을 금융·창업 정책 속에서 찾았으므로, 올해부터는 관련 정책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지역 산업의 전환점과 성장의 원동력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민건태 기자 mink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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