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없는 응급실 100일…"더 악화하면 포기할 상황 올 수도"

김인병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 "말 그대로 인력 갈아넣고 있다"
응급실 근무인력 '반토막'…"의대증원 매몰되지 말고, 필수의료 정책도 주목해야"
"저희가 3월에 응급실 끝까지 지키겠다고 했었는데, 그때는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죠. 기약이 없는 이 상황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김인병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은 29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미디어 아카데미에 참석해 지난 2월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 후 응급의료 현장의 어려움을 이같이 토로했다.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지난 2월 20일 오전 6시를 기해 병원을 떠난 지 이날로 100일째가 됐다.

전공의들의 부재에도 24시간 가동을 멈출 수 없는 응급실은 남아 있는 교수와 전임의 등 인력을 총동원해 말 그대로 '버티는' 중이다.

김 이사장은 "인력을 갈아 넣고 있다"고 표현했다. 학회가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련을 담당했던 병원 59곳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모든 병원이 전공의들의 이탈 후 응급실 운영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전공의들의 부재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당직과 진료에 모두 투입되다 보니 주간 근무 인력은 5.4명에서 1.8명으로 '3분의 1토막' 났다.

'24시간 2교대' 또는 '3교대'로 돌아가는 응급실 근무와 당직 등을 전공의 없이 전문의들이 도맡다 보니 근무할 수 있는 인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김 이사장은 "주간 근무 인원이 2명 이내로 떨어지면 환자가 와도 정상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지금 응급실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남아있는 인력을 총동원해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학회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 후 응급의료기관에 방문하는 환자 수는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환자의 중증도는 유지되고 있다.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15일까지 한 달간 응급실 내원 환자는 11만7천명으로, 작년 동기 대비 75%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 기간 응급실에 방문한 중증 환자는 9천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 9천300명의 98% 수준에 달해 큰 차이가 없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온몸으로' 중증환자에 대한 응급진료를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설문 결과 이번 사태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체감하는 중증환자 감소율은 3.8% 정도였다.

내원환자 감소율 30%보다 훨씬 낮았다.

이처럼 중증환자에 대한 응급진료가 간신히 유지되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한다고 김 이사장은 전했다.

그는 "정부가 말하는 의료개혁의 거대 담론, 큰 방향은 맞지만, 지금 당장의 현실에서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정상화) 기약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끝까지 응급실을 지키겠다는 마음이지만, 상황이 더 악화하면 자칫 응급실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지도 모른다"며 "다만 아직 거기까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의대 증원'에 이슈가 매몰돼 정작 필요한 의료개혁 과제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는 데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수가 개선, 의료전달체계 유지, 의료행위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등을 다루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찬성하지만, 의대 증원에 묶여서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대 증원) 기차는 달려가고 있는데, 그 뒤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같은 상황"이라며 "가더라도 수정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제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