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사서와의 점심시간

참새 몫으로 남긴 앵두서 느끼는
함께하는 식사 속 그리운 정감

이소연 시인
청량리역 6번 출구를 빠져나오며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 앱을 켠다. 근처 대여소에 따릉이가 7대나 남아 있다. 청량리역에서 동대문구답십리도서관까지는 자전거로 6분 거리다. 배차간격을 생각하면 버스보다 빠르다. 동대문구답십리도서관 상주 작가로 일하는 첫 달, 따릉이를 타고 왔다는 나에게 관장님은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이반 일리치의 책을 소개했다. 지구 환경을 이롭게 하는 목록을 말하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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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당연하고요, 도서관이 그 목록에 들어가요. 그리고 또 하나는 시예요.” 따릉이를 타고 도서관에 출근한 시인에게 이보다 큰 환대의 말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세련된 방식으로 한 사람이 스스로를 사랑하게 만든다니. 나도 관장님이 자신의 모습을 흡족해할 만한 말을 해드리고 싶었는데 궁리하는 사이 도서관 점심시간이 끝나 버렸다.정지돈 작가는 책 ‘영화와 시’에서 “점심시간은 밥을 먹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혼자 있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직장 상사와 점심을 먹는 것이 일의 연장선이 되기도 하는 걸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직장인의 점심시간에 대한 고찰이 가득한 글을 읽으며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점심시간만큼 짧은 시를 읽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했다. 멋진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어떤가. 정반대다. 이를테면 노원 더숲의 상주 작가가 된 김은지 시인과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답십리도서관 좋아?” “응, 아주 좋아!”

“뭐가 좋은데?” “사서들이랑 점심을 같이 먹는대!”은지 시인이 한바탕 웃었다. 도서관의 가장 큰 장점으로 ‘사서와의 점심시간’을 꼽다니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사실이다. 언젠가 혼자 밥을 먹다가 이상한 일에 휘말린 일이 있고 난 뒤로는 혼자서는 밥을 못 먹는 사람이 되었고 덕분에 위장병이 생겼다. 이전 직장에서는 다들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여서 홀로 된 나는 점심시간마다 가까이 사는 김은지 시인을 불러들였다.

얼마 전, 구례 동네 책방 ‘로파이’에 다녀왔다. 책방 툇마루에 앉아서 하늘을 드리운 앵두나무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시와 노래가 하늘처럼 흐르고 사위가 어두워 갈수록 밝아오는 얼굴들이 있었다. 엄마와 함께 온 아이는 앵두를 따 달라고 졸랐고 책방 주인은 가장 둥글고 예쁜 앵두를 따서 주었다. 아이의 앵두 같은 입술이 활짝 벌어지며 웃음이 번졌다.
앵두가 톡 톡 떨어지는 마당을 쓸면서 왜 떨어지기 전에 앵두를 따지 않는지 물으려는데, 참새 여럿이 내려와 떨어진 앵두에 입을 댔다. 점심시간에 모여 앉은 우리 도서관 사서들 같았다. 어제는 사서님이 집에서 싸 온 유부초밥 하나를 집어 내 밥 위에 올려 줬다. 이런 생각을 하면 혼자서도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진다.앵두에 손을 대면 새 떼들이 날아올까? 새는 사람의 손 냄새를 금방 알아본다고 했는데. 새는 사람보다 냄새를 80배 잘 맡는다고 한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놀라운 것은 어디에나 있다. 머위도 쑥쑥 자라서 꽃대를 내밀고 있겠지. 조용미 시인은 시 ‘다른 장소’에서 머위 꽃봉오리를 말리면 기침약이 된다고 썼다. “다른 장소를 걸을 때마다/각각/다른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문장이 선물 같다. 아직 앵두에 대한 시를 쓰지 못했으니, 시부터 기다려야지.

구례에 와서 앵두를 한 움큼씩 따서 투투 씨를 뱉었으니, 앵두가 내 몸을 입고 나에 대한 시를 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점심시간이 되었다. 여기선 굶지 않으니,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이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