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사서와의 점심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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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1
참새 몫으로 남긴 앵두서 느끼는청량리역 6번 출구를 빠져나오며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 앱을 켠다. 근처 대여소에 따릉이가 7대나 남아 있다. 청량리역에서 동대문구답십리도서관까지는 자전거로 6분 거리다. 배차간격을 생각하면 버스보다 빠르다. 동대문구답십리도서관 상주 작가로 일하는 첫 달, 따릉이를 타고 왔다는 나에게 관장님은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이반 일리치의 책을 소개했다. 지구 환경을 이롭게 하는 목록을 말하면서였다.
함께하는 식사 속 그리운 정감
이소연 시인

“답십리도서관 좋아?” “응, 아주 좋아!”
“뭐가 좋은데?” “사서들이랑 점심을 같이 먹는대!”은지 시인이 한바탕 웃었다. 도서관의 가장 큰 장점으로 ‘사서와의 점심시간’을 꼽다니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사실이다. 언젠가 혼자 밥을 먹다가 이상한 일에 휘말린 일이 있고 난 뒤로는 혼자서는 밥을 못 먹는 사람이 되었고 덕분에 위장병이 생겼다. 이전 직장에서는 다들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여서 홀로 된 나는 점심시간마다 가까이 사는 김은지 시인을 불러들였다.
얼마 전, 구례 동네 책방 ‘로파이’에 다녀왔다. 책방 툇마루에 앉아서 하늘을 드리운 앵두나무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시와 노래가 하늘처럼 흐르고 사위가 어두워 갈수록 밝아오는 얼굴들이 있었다. 엄마와 함께 온 아이는 앵두를 따 달라고 졸랐고 책방 주인은 가장 둥글고 예쁜 앵두를 따서 주었다. 아이의 앵두 같은 입술이 활짝 벌어지며 웃음이 번졌다.
구례에 와서 앵두를 한 움큼씩 따서 투투 씨를 뱉었으니, 앵두가 내 몸을 입고 나에 대한 시를 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점심시간이 되었다. 여기선 굶지 않으니,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이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