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김정은, 이번엔 "군부 깡패"

‘불타는 적개심을 가지고 펜으로 원수의 심장을 찌르는 심정으로.’ 영국 주재 북한 공사 출신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북한 외교관들이 비난 글을 쓸 때 당국은 이렇게 교육한다고 한다. 김정일은 생전 조선중앙TV 아나운서들에게 “입에서 항상 화약 냄새가 풍겨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언어는 공산 혁명을 위한 무기, 선전선동 수단이다. 어릴 때부터 공개 석상에서 자아비판 또는 상호비판을 할 기회가 많은데, 분노와 적개심을 끌어 올리기 위해 날카롭고 전투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게 습관화돼 있다. 교과서엔 원색적인 표현으로 한국 미국 일본 등을 향한 적대감이 가득하다.

대외적 담화에는 상당한 품을 들인다. 북한 외무성과 군부, 노동당 선전선동부에는 ‘작가’로 불리는 정예 글쟁이 수십 명씩이 포진해 있다. 주요 대남, 대미 담화와 성명은 김정은에게 직접 결재를 받고 내보낸다. 북한은 ‘맵짠(맵고 짠, 자극적인)’식 거친 표현을 쓰지 않으면 시선을 사로잡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태 전 의원은 전했다. 미사일 발사도 단순히 성공했다가 아니라 ‘주체탄들이 눈부신 섬광을 내뿜고 대지를 박차고…’식이다.‘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 ‘특등 머저리’ ‘판별능력 상실한 떼떼(말더듬이)’ ‘죽탕쳐(짓이겨) 버리자’ ‘여우도 낯을 붉힐 간특’ ‘절간의 돌부처도 웃길 추태’ ‘설태 낀 혓바닥’ ‘특등 졸개’…. 우리가 잘 생각하지도 못하는 온갖 조롱 비하 욕설 등은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산물이다.

김정은이 북한의 군사 정찰위성 발사가 정당하다며 이에 맞선 우리 군의 전투기를 동원한 대응 훈련에 대해 ‘군부 깡패들의 망동’ ‘히스테리적 광기’ 등 말폭탄을 쏟아냈다. 위성 발사를 자주적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했지만,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한 어떤 도발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는 점에서 적반하장이다. 막말도 모자라 ‘대남 오물 풍선’을 대거 내려보냈다. 적의 가득한 빨치산 시절 수준의 원색 표현을 쓰고 저질 행태를 벌이는 것 자체가 비정상 집단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