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규제 완화 없인 '친환경 시멘트'도 없다

폐건자재로 시멘트 만드는 유럽
규제에 꼼짝 못 하는 국내 업계

최형창 중소기업부 기자
최근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후베어트 그레흐 기후환경부 자원재활용파트장은 시멘트산업에서 순환자원(폐기물)의 대체 연료 사용을 “단순한 소각이 아니라 재활용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폐기물을 태우더라도 이를 통해 시멘트가 생산되고, 남은 열이 에너지로 전환되기 때문에 효과는 일석삼조라는 얘기다.

시멘트는 1450도 초고온 가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유럽에서는 열원으로 유연탄 대신 폐플라스틱, 폐타이어 등의 폐기물을 주로 사용한다.지난 23일 방문한 오스트리아 홀심시멘트는 대체 연료 사용 비율이 90%, 지난해 찾은 독일 피닉스시멘트는 100%에 달했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심한 유연탄을 고집해서는 ‘2050년 탄소배출 제로’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대체 연료 사용률이 35%에 그친다. 국내 일부 환경단체와 야권 인사의 반대가 극심해서다. 이들은 ‘쓰레기 시멘트’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시멘트 공정에서의 순환자원 사용을 막고 있다. 일석삼조 효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인식을 끊임없이 설파하고 있다. 막무가내식 억지 주장에 시멘트업계를 견제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시멘트산업이 폐기물 처리 ‘해결사’로 떠오르면 소각로 업계 등 기존 사업자들의 지위는 위축될 수밖에 없어서다.

국내 시멘트산업은 말 그대로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정부 정책에 발맞춰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데 정작 온갖 규제와 반대 논리에 가로막혀서다. 정부와 국회는 오히려 오염물질 배출 기준 등 환경 규제를 강화해 시멘트업계를 옥죄고 있다. 국내에서 대체 연료 전환 문제로 씨름하는 사이 유럽과 북미 지역은 원료 기준(혼합재 사용 최대 36%)을 바꿔가며 시멘트업계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국내에선 혼합재 사용 비중이 10%로 제한돼 있는 것과 대조된다.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 그에 걸맞은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시멘트그린뉴딜위원회는 2027년까지 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질소산화물 배출 저감을 위해 연간 최대 2조원의 시멘트업계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리스의 타이탄시멘트는 탄소 저감 관련 기술 투자를 인정받아 2억3400만유로(약 3430억원)의 유럽연합(EU) 혁신기금 지원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정부가 환경 설비 개선을 위해 지난해부터 연구 용역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충분한 자금 지원이 어렵다면 유럽처럼 규제 해소를 통해 업계가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