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신은 디테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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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GH) 사장“신(God)은 디테일에 있다.”
20세기 초반 디자인 혁신을 이끈 독일 바우하우스의 교장이자 모더니스트 건축가인 미스 반데어로에가 즐겨 말했다는 속담이다. 쉽게 보여도 대충해서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강조할 때 언급되는 말이다. 최근 쓰이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도 여기서 나온 듯하다.약 30년 전 벌건 대낮에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직후, 우리 건축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한 처방 중 하나가 건축사 면허의 대폭 확대였다. 당시만 해도 건축사 시험에 합격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는데, 정부는 자격증의 소수 독점이 건축물의 수준과 안전까지 위협한다고 봤고, 이전보다 훨씬 쉽게 시험에 통과할 수 있도록 바꿨다. 건축사들끼리 경쟁을 통해서 더 나은 건축과 문화를 만들어가자는 생각이었다.
해방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50여 년간 발급된 건축사 면허보다 1990년대 중반 5년간 합격한 건축사가 더 많다고 했을 만큼 다수의 건축사가 배출됐다. 양적인 확대가 질적인 상승과 올바른 변화를 가져온다는 믿음 때문이었는지 이후 우리 사회의 주요 자격증 시험 문턱도 낮아졌다. 물론 건축사를 양산하고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양적 변화가 질적 향상을 가져왔다는 증거를 찾기는 힘들다. 건축 수준은 사회 전반의 향상과 함께 높아졌지만, 일반인이 쉽게 건축사의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건축사들의 작업 환경이 크게 개선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내년 의대 입학정원이 1500여 명 늘어난다고 한다. 의대교수협의회는 대법원 판결까지 봐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언제 판결이 확정될지는 불확실하다. 이번 경우는 건축사나 변호사 시험 합격자 증원과는 또 다르다. 전자는 교육 정원은 그대로 둔 채 시험 합격자만 증원했지만, 이번엔 학생 증원이니 검토해야 할 문제가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내년도 입학생이 본과에 들어가기까지 2년 정도 시간이 있으므로, 그동안에 필요한 시설 등을 완비한다는 계획이 있다고 들었다. 교육에 필요한 임상교수는 이미 활동하고 있는 의사 중에서 충원할 것이라고도 한다.
다만 해 본 사람은 안다. 현실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그 자체라는 것을. 그래서 건축학인증 요건에는 교수 1인당 실습 학생을 최대 몇 명이라고 못 박고 있다. 의대는 임상교수뿐 아니라 기초의학교수와 실습용 시신 부족 등 여러 난제를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수가 조정, 필수의료인력 이슈 등 복잡한 사항들이 더 있겠지만, 철저하고 꼼꼼한 준비로 대비해야 할 것이다. 항상 신은 디테일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