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고초려도 소용없네"…BHP·앵글로 인수합병 결국 불발

사진=REUTERS
삼고초려 인수합병(M&A) 제안도 통하지 않았다. 호주의 세계 최대 광산기업 BHP의 앵글로아메리칸 인수 시도는 3차례에 걸쳐 입찰가를 82억파운드(약 14조원) 올렸음에도 불발됐다. 앵글로아메리칸의 구리 광산 사업부만 '체리피킹(어떤 대상에서 좋은 것만 고르는 행위)'처럼 인수하겠다는 BHP의 제안에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BHP는 29일(현지시간) "규제 리스크와 비용 처리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해 앵글로아메리칸에 대한 확정적인 인수 제안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 자회사를 둔 앵글로아메리칸의 본사는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어 영국 법의 적용을 받는다.앞서 BHP는 앵글로아메리칸에 영국 M&A 규정상 확정 제안을 위한 기한 연장을 요청했지만, 앵글로아메리칸이 이에 응하지 않았다. 향후 앵글로아메리칸을 인수하겠다는 또 다른 입찰자가 나오지 않는 이상 BHP는 6개월 간 재인수에 나설 수 없다.

앵글로아메리칸은 BHP의 앞선 3차례 인수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BHP는 지난달 앵글로아메리칸에 311억파운드 인수를 제안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이달 초 인수가를 340억파운드로 높여 재협상에 나섰지만 또 다시 거절 당했다. 이후 지난주 393억파운드를 내건 BHP의 3차 제안이 있었지만, 협상이 결렬됐다.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자 BHP는 이날 확정 입찰 마감일에 응하지 않았다.

BHP가 앵글로아메리칸에 삼고초려를 했던 것은 구리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전 세계가 탈탄소화로 인해 구리 수요가 증가하고 공급이 타이트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BHP의 현재 사업 포트폴리오 대부분은 철광석이다. 2023년 매출 기준 46%에 이른다. 구리 비중은 26% 가량이다.앵글로아메리칸은 구리 사업부가 약 30%를 차지한다. BHP는 앵글로아메리칸 인수를 통해 단숨에 전 세계 구리 공급량의 10%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BHP가 구리 사업부만을 인수 조건으로 제시한 게 화근이었다. BHP는 "남아공에 상장돼 있는 앵글로아메리칸의 백금, 철광석 자회사 2곳은 분사한 뒤 사지 않겠다"고 했다.

앵글로아메리칸은 "자회사 분할 작업에 시일이 오래 걸리고 해당 사업부의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라며 "BHP가 우리 회사의 가치와 미래 전망을 상당히 저평가하고 있다"고 반대했다. BHP의 인수 조건이 전해지자 남아공 현지에서는 정치권 등의 반발이 빗발쳤고, 결국 이날 최종 무산으로 이어졌다.

앵글로아메리칸은 이달 초에 발표한 자체 분사 계획을 진행할 예정이다. 백금, 다이아몬드 사업부를 분할한 뒤 구리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인수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는 광산업체들이 대규모 거래를 다시 시작할 것이란 점을 보여준다"며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원자재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광산업체들은 직접 광산을 개발하는 것보다 인수하는 것이 더 쉽고 저렴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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