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도, 늦어도 문제"…금리 인하 '천천히 서두른다'는 한은 [강진규의 BOK워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받으며 머리를 긁고 있다.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를 연 3.50%로 유지한다고 결정했다. /임형택 기자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

이 라틴어 격언은 과거 로마제국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정책 결정 원칙으로 유명하다. 무슨 일이든 너무 서두르면(festina)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너무 기다리면(lente) 타이밍을 놓쳐 효과가 약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균형적인 정책 결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향후 통화정책의 운용 방향에 대해 설명하면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이 격언을 들고 나왔다. 박영환 통화정책국 정책총괄팀장과 성현구 과장이 지난 29일 쓴 '향후 통화정책 운용의 주요 리스크'에서다.
Augustus von Prima Porta (20-17 v. Chr.), aus der Villa Livia in Prima Porta, 1863

금리 너무 빨리 내리면 물가·환율·가계부채 불안해져

한은은 두가지 측면의 리스크를 상세히 소개했다. 빠른 정책기조 전환에 따른 리스크로는 물가의 목표수렴 지연, 환율의 변동성 확대, 가계부채 증가세 확대 등을 꼽았다. 국내 물가 상황의 경우 근원물가 상승률은 완만한 둔화 추세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기대인플레이션은 3%내외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공급충격이 지속될지에 관해서도 불확실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 기조가 빠르게 전환될 경우 물가상승률의 둔화 속도가 느려지면서 물가 목표(2%) 수렴 시기가 지연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지적이다. 분석 결과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태에서 금리 인하를 할 경우,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기대인플레가 낮은 상황에 비해 1.5배 큰 것으로 나타났다.
기대인플레이션 수준별 금리인하에 대한 근원물가 반응. 한국은행 통화정책국
환율도 문제다. 현재 미 달러화지수가 강세를 나타내면서 글로벌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커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도 1300원 이상의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한은은 "국내외 외환시장의 경계감이 높아져 있는 상황에서는 내외금리차가 원·달러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커진다"고 분석했다.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물가 상승률 둔화 속도가 느려지고, 자본유출입으로 금융 안정에도 영향을 준다. 가계대출이 다시 증가할 수 있다는 점도 너무 이른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혔다.

너무 늦게 내리면 내수 부진·금융 불안 확대

하지만 마냥 금리 인하를 지연해야할 상황도 아닌 것으로 분석됐다. 정책기조를 너무 늦게 전환할 경우 수출·내수 간 차별화 심화, 금융시장 불안 리스크 증대 등이 우려된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국내 경기 상황을 보면 내수는 1분기 중 반등한 소비와 건설투자가 2분기 이후 조정받는 모습이다. 반면 수출은 글로벌 IT경기 등 대외요인 영향으로 호조가 나타나고 있다. 내수가 부진한 이유로는 고물가와 금리 영향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 통화 긴축 기조가 장기간 유지될 경우 이같은 내수 부진이 이어질 수 있다고 한은은 지적했다.수출과 내수의 차별화가 확대될 경우 예상치못한 대외 충격이 발생했을 때 취약하다. 수출이 외부요인에 의해 급감할 때 내수가 버텨줘야하는데 현재의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면 경기가 크게 침체할 수도 있다.
소비둔화에 대한 실질임금 감소 및 이자상환 부담의 영향. 한국은행 통화정책국
금융 시장의 부실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은은 "통화긴축 기조 지속이 중장기적으로 부동산PF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측면이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부동산PF 부실 확대로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긴축이 장기화할수록 부실 위험이 커지고, 연체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

박 팀장은 "정책기조를 너무 일찍 전환할 경우엔 물가 상승률의 둔화속도가 느려지고, 늦게 전환하면 내수 회복세 약화, 연체율 상승 등 시장불안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며 "양 측면의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면서 결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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