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공주·여자탐정 셜록…지금 무대 위는 '젠더 프리' 열풍

공연계 부는 '젠더 프리' 바람

명탐정 셜록 홈즈는 여성이 주인공
최정원이 연기하는 그리스 신 '헤르메스'
'햄릿' 각색해 복수에 미쳐버린 햄릿 공주도

"한국 사회 속 갈등 보여주는 예술적 시도"
지난 3월 한국 초연 무대에 오른 연극 ‘바스커빌 : 셜록홈즈 미스터리’에는 여탐정 셜록 홈즈와 여자 왓슨 박사가 등장한다. 성별과 상관없이 배역을 정했기 때문이다. 셜록 역에 뮤지컬 ‘렌트’에서 조앤, ‘레드북’에서는 코렐을 연기한 정다희가 캐스팅됐다. 왓슨은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페기 소여’ 역할로 알려진 양소민이 연기하고, 6월 개막하는 연장공연에서는 배우 오소연이 합류한다.

원작 공연은 토니상 수상자인 미국 극작가 켄 루드윅이 추리 소설 ‘바스커빌의 개’를 연극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명탐정 셜록 홈즈가 그의 파트너 왓슨 박사와 함께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재해석해 2015년 초연했다.한국 공연은 오리지널 공연과 달리 셜록과 왓슨 배역에 남녀 배우가 모두 캐스팅하는 시도를 했다. 남성 캐릭터로 각인된 셜록과 왓슨을 여성 배우가 연기해 “기존 셜록 홈즈의 이미지와 다를까봐 걱정했지만, 오히려 캐릭터 특성이 잘 드러났다”는 호평이 이어져 10월까지 공연을 연장하기로 했다. 공연은 서울 대학로 예스24아트원 3관에서 6월9일까지, 연장 공연은 6월22일부터 10월20일까지 열린다.

◇공연계가 성별을 넘나드는 방법들

요즘 공연계의 키워드는 ‘젠더 프리’다. 셜록 홈즈,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 햄릿. 이름만 들어도 남성 주인공이 자동 연상되는 역할을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공연이 잇따르고 있다.

공연이 성별을 뒤섞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젠더 프리(gender-free)는 배역을 성별과 상관없이 정하는 방식이다. 대본 자체에 성별이 정해지지 않거나, 성별이 정해진 역할이라도 배우 캐스팅은 그와 무관하게 한다. 젠더 밴딩(gender-bending)은 아예 배역의 성별을 뒤집어 각색하는 방식이다. 젠더 프리는 원작은 건드리지 않고 배우의 성별만 바꾸는 방식이라면 젠더 벤딩은 아예 인물의 설정 자체를 바꾼다는 차이점이 있다.이런 젠더 프리 작품들이 나오는 배경에는 사회가 품고 있는 선입견과 젠더 갈등이 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컬러 프리’ 캐스팅으로 인종 간 구분 없이 배역을 맡는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며 “공연계의 이런 시도들은 그 지역의 문화나 사회적 이슈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연을 통해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뛰어넘고 성숙한 문화를 정착하려는 예술적 시도”라고 평가했다.

◇뮤지컬의 전설 최정원이 연기하는 '헤르메스'

최근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하데스타운'.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그래미어워즈 최고의 뮤지컬 앨범상과 2019년 토니어워즈 8관왕을 휩쓴 화제작이다. 2021년 한국 초연 공연에 이어 오는 7월 두 번째 시즌이 열린다.배경을 고대 그리스에서 미국 대공황 시대로 옮긴 현대판 오르페우스 신화를 그린다. 주인공 ‘오르페우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은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를 저승에서 되찾아오는 이야기다. 지난 2월 미국 투어 공연에서 한인 배우 티모시 이(이해찬)가 ‘오르페우스’를 연기해 브로드웨이 뮤지컬 투어에서 주연을 맡은 최초의 동양인 배우가 되기도 했다.

두 번째 시즌에서 젠더 프리 캐스팅을 최초로 시도한다. 가장 눈에 띄는 캐스팅은 여성 헤르메스. 헤르메스는 오르페우스의 저승길을 안내하는 제우스의 전령이다. 이 작품의 해설자 역할을 맡은 핵심 등장인물이다. 남성 캐릭터로 묘사되는 헤르메스 역에 초연에 참여했던 최재림, 강홍석과 더불어 배우 최정원이 캐스팅됐다. 이 캐스팅에 대해 공연계에선 “최정원이 연기하는 헤르메스는 ‘어머니’ 같은 색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최정원에게는 커리어 최초로 젠더프리 역할이다. 그는 “헤르메스는 남자 역할이지만 대본을 읽는 순간 내가 가진 철학과 통하는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고 대사도 가슴에 와닿았다”며 처음으로 도전하는 젠더 프리 연기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최정원이 여자 ‘헤르메스’를 연기하는 ‘하데스타운’은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7월12일부터 10월6일까지 공연한다.

◇햄릿 왕자가 대신 햄릿 공주…국립극단 '햄릿'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햄릿’은 원작 속 성별을 아예 뒤집은 사례다. 2021년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공연으로 열렸던 작품이 오는 7월에 3년 만에 관객을 만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은 중세 덴마크 왕자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숙부 클로디어스 왕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그린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바로 ‘햄릿'에 나오는 대사다.

연출가 부새롬과 각색가 정진새가 햄릿 왕자를 공주로 바꿨다. 배우 이봉련이 복수에 미친 햄릿 공주를 연기한다. 이봉련은 2021년 공연에서도 햄릿 역을 맡아 그해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을 받았다.

원작 속 햄릿과 사랑에 빠지는 오필리어는 남자로 바뀌어 류원준이 연기한다. ‘길덴스턴’, ‘호레이쇼’, ‘마셀러스’를 포함한 햄릿 측근 인물들도 성별을 뒤섞었다. 부새롬 연출은 “여성도 남성처럼 왕권을 갖고 싶고, 복수심을 품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성별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본질 탐구하는 작품”이라고 각색 배경을 설명했다. 공연은 7월5일부터 7월29일까지 서울 명동 국립극단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다.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