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예술이 만나…장신구로 대화하다

한국·오스트리아 장신구 교류전 - '장식 너머 발언'

과거-장신구에 담긴 역사
한국의 금속공예 장인들
다양한 소재로 한계 뛰어넘어

현재-신체와 자연의 서사
한, 사람·장신구 상호작용 주목
오스트리아, 사회 메시지 표현

미래-새로운 예술 세계로
3D프린터·레고로 만든 목걸이
플라스틱과 돌의 결합도 눈길

111명 작가 675개 작품 전시
7월28일까지 서울공예박물관
이광선 'ms5'
과거 왕실에서 장신구는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의 상징이었다. 미술 또는 예술의 영역이기보다는 화려한 과시의 수단이었단 얘기다.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이들은 감히 넘볼 수조차 없는 그들만의 소유물. 하지만 20세기 후반,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장신구를 보는 시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현대장신구’라는 예술 장르가 등장하며 장신구가 독립적인 예술품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김용주 '돌출 정도의 다양성 No.2'
왕실의 소유물에서 보편적 예술이 된 장신구의 변신은 예술가들을 잉태했다. 선구자가 된 작가들은 금과 은 보석을 쓰는 대신 철, 소뿔 등 다른 재료에 과감히 손댔다. 공예적 실험을 통해 예술적, 철학적,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표현 매체로 장신구를 이용하기도 했다. 지난 27일 서울 안국동 서울공예박물관에서 개막한 한국·오스트리아 장신구 교류전 ‘장식 너머 발언’은 그 흥미로운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다. 과거 권력의 상징이자 탐미의 대상이던 전통장신구의 한계를 넘어 재료와 형식 실험을 통해 새로운 언어가 된 현대장신구의 예술성에 집중한다.이번 교류전의 제목은 전시의 메시지를 그대로 담았다. 서울시와 오스트리아가 함께 기획한 이 전시는 지난해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주얼리 전시의 작품들을 한국 장신구와 함께 조명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1892년 양국이 수교를 맺은 이후 사상 처음으로 개최되는 대규모 장신구 교류전이기도 하다. 이 전시를 위해 모인 작가만 111명, 작품은 675점에 이른다. 오스트리아에서는 57명의 작가가 작품을 들고 서울을 찾았다.
윤덕노 ‘Wings’
‘장식 너머 발언’ 전시는 양국 장신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명하는 세 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주얼리라는 예술 장르를 처음 개척한 1세대 작가에서 시작해 후세대 작가들의 작업, 그리고 미래 주얼리 예술의 발전 방향을 보여주는 작업을 시간순으로 보여준다.

소재와 디자인 혁명 ‘주얼리 아방가르드’

3층 전시장에 올라서면 주얼리의 선구자들이 우선 관람객을 맞이한다. ‘주얼리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이 붙은 첫 섹션에서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과 오스트리아 양국의 현대장신구 역사를 조명한다. 작가 31명의 장신구 143점이 나왔다. 당시 오스트리아 1세대 현대장신구 작가들은 페미니즘과 같은 사회적·정치적 발언을 장신구에 직접적으로 담으며 활동했다. 단순히 장신구에 머무는 것을 넘어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그 범위를 넓혀갔다. 조각이나 퍼포먼스 작가들과도 함께하며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했다. 소재의 한계도 뛰어넘었다. 금속에 플라스틱을 처음으로 결합하며 오스트리아 작가들은 당시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80년대 접어들어서는 종이와 직물 등 여러 소재를 차용했다.
김정후 ‘물방울29’
한국은 이정규와 김정후 등을 비롯해 금속공예를 기반으로 국내에 예술장신구를 전파한 1세대 작가 7명을 소개한다. 이들은 유럽과 미국 등으로 유학을 다녀온 1세대 금속공예 장인들인데, 장신구에 적합하다고 여겨지기 힘든 철을 이용하거나 소뿔을 사용해 화각 작품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다.
전은미 '독수리 날개'

아랫배 나오게 만드는 장신구·동물내장 목걸이

콘스탄체 프레히틀 ‘About Colour Flow’
2부 ‘현대장신구의 오늘’ 섹션에서는 2000년대 이후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현대장신구들이 출품됐다. 신체, 자연, 서사 등 세 가지 소주제가 담긴다.

2000년대 초반 오스트리아는 대학을 넘어 개별 장신구 스튜디오가 떠오르던 시기였다. 한국 또한 금속공예의 테두리를 벗어나 대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재료를 탐구하던 시기다. 같은 시기 두 국가가 보여준 장신구 양식의 변화를 탐구해볼 수 있다.
페트라 침머만 ‘Untitled’
첫 번째 소주제인 신체를 다루는 두 국가의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한국 장신구는 몸과의 상호작용성에 주목했다. 착용하는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장신구가 유연히 움직이게끔 시도한 작품이 많은 이유다. 금속 팔찌에 실리콘을 주입해 몸에 맞게 하는 등 착용자와 작가 사이의 교감에 집중했다. 지난해 로에베공예재단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된 전은미의 작품도 나왔는데, 동물 내장을 얇게 펴서 목걸이로 만든 것이다.
주자네 하머 ‘Out of line’
오스트리아는 착용자 대신 인간과 사회 메시지에 주목했다. 페미니즘에서 시작해 젠더 이슈를 주얼리로 표현했다. ‘미(美)’라는 기존의 관념과 개념이 옳은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떨어진 허벅지 사이를 금속 장신구로 메우거나 아랫배가 튀어나온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장신구를 제작하는 등의 시도를 하며 사회에서 다루는 아름다움, 날씬함의 기준을 비꼰다.
미셸 크래머 ‘have you got the guts’
자연을 테마로 한 섹션에선 양국 작가들이 자연을 해석하는 방식을 비교한다. 쌀을 연결해 장신구를 만든 공새롬의 작품과 산업용 소재 벨크로의 유연성과 자연의 유기성이 닮았다는 모티브로 작업을 펼치는 김용주의 작업이 소개됐다. 오스트리아의 베네딕트 피셔가 내놓은 하얀 장식 시리즈는 하얀 진주가 인간과 자연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플라스틱과 돌, 3D 프린터와 만나다

3부인 ‘현대장신구의 내일’에서는 전시를 정리하며 미래장신구의 방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나왔다. 주로 지금까지 쓰이지 않은 소재들을 차용한 작업이 소개된다. 한국은 3차원(3D) 프린터로 목걸이 등을 만들거나 버려지는 레고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장신구로 탄생시킨 작품들이 나왔다. 오스트리아는 플라스틱과 돌을 결합해 사용하며 기하학적인 모양을 표현한 장신구를 펼쳐놓는다.
이정규 ‘시간의 소리2’
이번 전시는 울프강 앙거홀저와 수잔네 앙거홀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 부부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2020년 여름 한국을 찾아 우연히 압구정의 한 갤러리를 방문했다. 마침 한국의 주얼리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그곳에서 한국 장신구의 예술성에 큰 감명을 받았다. 곧장 오스트리아와 한국의 주얼리 예술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를 서울에 제안했다고. 오스트리아 정부도 이번 교류전을 위해 재정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개막일 전시장을 찾은 오스트리아 기획자들은 “이번 서울 전시를 통해 양국의 주얼리 예술이 대화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대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예술세계가 창출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전시는 오는 7월 28일까지다.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오에서 6월 12일까지 열리는 오스트리아 주얼리 전시 ‘비엔나 콜링’에서도 오스트리아 작가들의 장신구를 만나볼 수 있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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