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고 새기고 AI 보정…이젠 찍지 않고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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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미술관 - '프랑스현대사진展'
May30 - August 18, 2024
앙주 레치아, ‘바다 스틸컷’(1991). 성곡미술관 제공 ⓒAnge Leccia
‘프랑스현대사진전’은 19세기 중반 사진을 발명한 프랑스에서 발전해온 오늘날 사진 예술의 수준을 가늠하는 전시다. 인공지능(AI) 등 과학의 발달로 카메라가 구닥다리 기술이 된 지금, 사진이 오히려 단순히 시간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현실과 가상을 중첩하는 첨단 미술의 미래라는 맥락에서다. 서울 경희궁길 성곡미술관에서 30일 개막한 프랑스현대사진 전시가 반가운 이유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의 에마뉘엘 드 레코테가 공동기획자로 참여했다. 레코테는 퐁피두센터와 파리시립미술관에서 10년 이상 사진 전문 큐레이터로 지내며 현장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쟁점을 연구해 왔다. 지난 29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전시 내내 전통적인 주제와 기법, 그리고 최첨단을 변용해 창작해내는 사진 작업 방식에 일종의 긴장감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22명의 작가 작품 86점을 모았다. 20대 사진가부터 프랑스 사진계를 주름잡아 온 80대 원로 작가까지 다양하다. 전시장에 발을 들이기 전 일반적인 사진전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작품을 볼 때마다 ‘이게 사진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기 때문. 고전적 촬영과 인화 기법을 쓰면서도 암실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한 사진을 만들고 이미지에 물리적 개입까지 서슴지 않는다.

시몽 브로드벡과 리쉬 드 바르뷔아 커플의 작품 ‘평행의 역사’ 연작은 생성형 AI 미드저니로 만들었다. 눈물이 다섯 갈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기괴하다. 어느 시대, 누구의 작품인지 알려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람 묘사를 통해 AI가 재창작한 것으로 인간의 인지와 기억이 AI의 데이터 저장과 어떻게 다른지를 살필 수 있어 재밌다. 라파엘르 페리아는 사진 이미지를 매개 삼아 데생에 가까운 작업을 한다. 전시에 걸린 그의 작품 ‘조류 시장 #4’는 프린트 표면을 긁어낸 ‘그라타주’ 기법이 돋보인다. 일부러 사진 표면을 규칙적으로 긁어 흰 부분을 드러내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존재에 대한 기억에 물음표를 던진다.

사진인 듯, 아닌 듯한 작품들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예술하기’로 요약된다. 기묘한 미장센으로 이미지 이면의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고전적인 사진의 개념에서 벗어나 AI 같은 과학기술에 촬영을 맡겼다. 사진을 깔보던 회화의 기법을 끌어들인 것은 결국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예술이 보다 풍성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전시는 8월 18일까지.

유승목 기자 moki912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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