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 없는 저출생대책 싹 걷어내고…'일·가정 양립'에 화력 집중

저출생 특별회계 '10조+α'
예산 재구조화

7개 부처에 흩어진 예산 통합
중복·백화점식 사업 줄이고
정책 효과 나오는 곳에 예산 편성

아동수당·부모급여·첫만남이용권
분산된 각종 현금 지원도 합쳐
육휴급여 상한 150만→200만원
서울 동대문구에서 맞벌이로 두 아이를 키우는 허모씨(43)는 지난해 둘째를 출산하면서 육아용품 구매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첫만남 이용권’ 300만원어치를 받았다. 둘째가 두 살이 될 때까지 부모급여를 매월 50만원을 받는다. 허씨 부부 모두 6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사용해 육아휴직 급여도 월 450만원씩 받았다. 아동수당은 일곱 살인 첫째를 포함해 월 20만원을 받는다. 허씨는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어서 육아를 하면서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면 아이를 갖겠다’ 싶을 정도로 파격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일·가정 양립 지원 확대

30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현재 저출생 대책에 관여하는 정부 부처는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행정안전부, 국세청 등 7곳에 달한다. 기재부는 예산을 편성하고 나머지 부처는 예산을 집행한다. 복지부는 아동수당과 부모급여, 자녀양육수당을 담당한다. 고용부는 단축근무, 육아휴직을 관할한다. 아이돌봄서비스와 다자녀특별공급은 여성가족부와 국토교통부 소관이다. 부부의 소득이 7000만원 이하면 18세 이하 자녀 1인당 100만원을 지급하는 자녀장려금은 국세청이 지급하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저소득이 아닌 일반가정에서 올해 태어난 아이 7세까지 2960만원을 받는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들도 임신·출산 축하금 같은 지원 제도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저출생 대책의 출산 장려 효과는 크지 않았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올 1분기 합계출산율은 0.76명으로 처음으로 0.8명 선이 무너졌다. 저출생 대책 수는 많지만 지원 규모가 적은 데다 사업 중복이 심한 점이 출산 장려 효과를 내지 못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저출산위가 10조원 규모의 특별회계를 신설하려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부처별로 중복되거나 비효율적인 저출생 대책을 걷어내고 실효성 높은 대책에 예산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저출산위는 우선 아동수당, 부모급여, 첫만남 이용권 등으로 분산된 각종 현금 보조를 통합하고 아동수당 지급 연령도 17세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이가 클수록 양육비는 늘어나는데 정부 지원은 8세 미만 영유아기에만 집중돼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일·가정 양립을 위한 예산도 대폭 늘린다는 계획이다. 육아휴직 사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육아휴직 급여의 상한을 현행 1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높이는 방안을 고려하는 게 대표적이다. 저출산위는 이를 통해 육아휴직 사용률을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육아휴직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육아휴직 급여)은 44.6%로, 비슷한 제도를 운용 중인 27개 회원국 중 17번째에 그쳤다. 저출산위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지원, 유연근로 활성화 등에 대한 예산 지원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

○재원 조성 등은 과제

저출생 특별회계를 신설하는 데는 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재원을 어디서 끌어올지 결정하는 게 우선 과제다. 육아휴직 급여를 부담하는 고용보험기금(작년 적립금 8조원)과 신생아 특례대출 등의 재원인 주택도시기금(작년 조성액 95조원), 시·도 교육청에 배정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올해 예산 72조원) 등이 고려된다. 하지만 이 기금들 역시 별도의 사용처가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거액을 저출생 특별회계로 돌리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저출산위 관계자는 “재원 확보 방안을 놓고 기재부 등 예산 당국과 협의하고 있다”며 “기금 본연의 사업을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부분도 논의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허세민/황정환/정영효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