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심취한 독재자, 히틀러가 파괴한 예술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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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숭배자였던 히틀러
큐비즘 다다이즘 등은 탄압
문화적 다양성 급속히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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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직 외교관이자 문화 역사가인 프레더릭 스팟츠의 <히틀러와 미학의 힘>은 히틀러의 예술가적 측면이 그의 정치적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구한다. 히틀러의 예술적 관심은 그림뿐 아니라 건축, 조각, 음악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매료된 히틀러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특히 음악에서 히틀러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숭배자에 가까웠다. 바그너의 음악은 히틀러에게 강력한 영감의 원천이 됐다. 그는 바그너의 오페라를 통해 독일 민족의 영혼을 표현하고자 했고, 나치 이념을 홍보하는 도구로 삼았다. 그밖에 지크프리트 바그너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등과 같은 음악가들을 지원함으로써 그들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념을 확산시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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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개인 취향에 맞지 않는 예술은 철저히 탄압했다. 그는 모더니즘 예술이 유대인에 의해 확산됐다고 보고 통제 대상으로 삼았다. 큐비즘, 다다이즘, 표현주의 등을 이른바 '타락한 예술'로 간주하고, 바실리 칸딘스키나 파울 클레,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와 같은 화가들을 배격했다. 결국 많은 예술가들이 독일을 떠나 망명했고, 독일 예술계의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은 급격하게 쇠퇴했다.역사상 수많은 독재자들은 대중을 통제하고 자신을 기념하는 수단으로 예술을 활용해 왔다. 더 나아가 히틀러에게 예술은 수단인 것과 동시에 목적이었다. 나치 독일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문화국가로 만들고자 한 히틀러에게 예술은 궁극적으로 권력이 지향해야 할 목적이었다. 이 책은 정치인이 아닌 예술가로서 히틀러의 기록을 통해 독재자가 예술에 심취했을 때 어디까지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