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영화인을 위한-기적에 가까운 11번째 들꽃영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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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제11회 들꽃영화상 시상식올해 제11회를 맞는 들꽃영화상이 지난 5월 29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렸다. 들꽃영화상은 국내 유일의 독립영화 시상식이다. 영화평론가 오동진과 달시 파켓에 의해 만들어진 들꽃영화상은 국비나 여타 다른 고정 지원 없이 순수하게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후원과 도움만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기적에 가까운’ 영화상이다. 매해 후원금액과 기업 협찬의 수가 달라지는 이유로 들꽃영화상은 늘 재정의 어려움이 있지만, ‘들꽃’이라는 이름처럼 꿋꿋하고 착실하게 10년이라는 시간을 넘기며 수많은 재능과 작품을 발굴하고 축하하는 역할을 했다. 올해 역시 수려한 독립영화들, 영화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여우주연상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올해의 배우상과 한국감독조합 상 등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던 작품 <울산의 별>의 김금순 배우가 수상했다. 이 작품에서 김금순 배우는 남편의 사고사 이후 조선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윤화’역을 맡아 활약한다. 김금순은 김재선 감독의 데뷔작 <잠>에서 무당 역을 맡아 영화보다 더 위협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남우주연상은 <빅슬립>의 주인공, ‘기영’역으로 활약한 신인 배우 김영성이 수상했다. <빅슬립>은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와 많이 닮아있는 작품으로 거칠고 외로운 청년 기영이 갈 곳 없는 청소년 길호를 보듬게 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동시에 암 투병 생활을 했던 어머니와 아내를 언급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마도 올해 후보작들 중 가장 특이하고 재기발랄한 작품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각본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11살 ‘동춘’이다. 동춘은 소풍에 가져간 아침햇살이 막걸리로 만들어지며 내는 거품소리에서 심오한 암호가 전해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모스 부호와 페르시아어를 이용해 막걸리와 소통을 하게 된 동춘은 그날 이후로 로또 당첨 번호와 인생의 이치 등 갖가지 세상의 비밀에 대해 배우게 된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93년생 감독 김다민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의 각본을 썼던 김다민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질 수 없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소설로도 써놓고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는 웃픈 비하인드를 전하기도 했다. 들꽃영화상의 가장 큰 영예인 대상은 김미영 감독의 <절해고도>가 수상했다. 박종환, 이연 배우 주연의 <절해고도>는 촉망받는 조각가였던 ‘윤철’ (박종환)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아내와 이혼 후 시골에서 무엇이든 납품하는 인테리어 업자로 살아가다가 그마저도 그만두고 국숫집을 차린다. 그에게는 미술에 재능을 보이는 ‘지나’ (이 연)라는 딸이 있다. 어느 날 그는 기괴한 그림을 아무 데나 그리며 문제아로 낙인찍힌 지나로 인해 그녀의 학교로부터 호출을 받는다. 어린 나이에 이미 속세에 지쳐버린 듯한 지나는 미대 진학을 포기한 채 출가를 선언하며 비구니가 되고자 한다. 동시에 윤철은 ‘영지’라는 여자를 만나 예기치 못한 사랑을 시작한다. ‘육지에서 떨어진 외딴섬’이라는 뜻을 가진 절해고도는 이 영화에서 지나이기도 하고 윤철이기도 하면서, 때론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영지이기도 하다. 이들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떨어져 있는 섬처럼 가까이 갈 수가 없다. 혹은 서로로부터 떨어져 있기에 더 사랑할 수가 없다. 윤철은 비구니가 되겠다는 딸을 말리고 싶지만, 그러기보다는 스님으로서의 그녀의 일상을 돕기로 한다. 지나의 암자에서 그는 청소와 수리를 도맡아 하며 다른 스님들과도 연을 쌓는다.
영화인과 관객 후원으로 운영되는 영화제
대상엔 김미영 감독
섬처럼 살아가는 중생들의 모습 담아
재기발랄한 각본상
그렇게 <절해고도>는 가까운 듯해도 ‘섬’의 운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중생들의 운명을 서정적이고도 처연하게 그리는 영화다. 산과 숲, 암자와 마을을 교차하며 그사이를 채우고 오가는 사람들을 스케치하듯 보여주는 촬영은, 영화를 마치 정성스럽게 그려진 산수화처럼 감상하게 만든다. 영화의 주연인 박종환 배우 (올해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다)는 <절해고도>에서 그의 (이제껏) 필모그래피에 있어 가히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그는 삭발을 하고 비구니가 된 딸을 지켜보는 (혹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아버지, 그리고 그 시점부터 아버지가 아닌 스님의 친구가 되기로 한 중생의 모습과 표정을 섬세하고도 강렬하게, 그리고 캐릭터를 향한 무한한 애정을 담아 관객에게 전달한다. 늘 시상식의 단골 멘트로 등장하는 말이지만 들꽃영화상의 후보작들은 그 어떤 작품이 수상을 해도 반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빼어난 영화들이다. 누가 트로피를 받게 돼도 관객, 영화인 할 것 없이 제 일처럼 기뻐하는 것은, 그렇기에 들꽃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임과 동시에 당연한 광경이기도 하다. 올해도 온갖 부침을 겪었지만 영화상은 보란 듯이 더 당당하고, 감동적인 귀환을 보여주었다. 대한민국에서 영화 창작자들이 가장 빛나는 영화시상식, 들꽃영화상의 영생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수상작 중 일부는 오는 7월 2일부터 6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 지하 1층 2관에서 '제 11회 들꽃영화제' 프로그램으로 재상영된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관련기사] 봉준호 다룬 넷플릭스 다큐 '노란문', 들꽃영화상 특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