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자식 잃은 심정 같아요" 과수화상병에 파헤쳐진 농심

28년 가꾼 배 과수원 모두 매몰…"앞으로 어떡할지 막막해"
"30년 가까이 키운 배나무들을 모두 묻어버리는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자식 잃은 것과 똑같습니다.

"
31일 강원 홍천군에서 5천㎡ 규모로 배 농장을 하는 이모(63)씨는 28년간 길러온 나무 200여그루가 모두 뽑혀 땅에 묻히자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씨는 지난 23일 농장에서 10그루 넘는 나무의 잎과 가지가 검게 마른 것을 발견했다. 간이 진단에서 과수화상병 양성 판정이 내려졌고 이튿날인 24일 오후 정밀 진단 결과도 최종 양성으로 확인됐다.

이씨의 과수원은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었다.

과수화상병은 주로 사과, 배 등 장미과 식물에서 발생하는 세균 병으로 이 병에 걸리면 식물의 잎, 꽃, 가지, 줄기, 과일 등이 붉은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변하며 마르는 증상이 나타난다. 치료약제가 없어 농가에 5% 이상 발생하면 해당 과수원 전체를 매몰 처리해야 하기에 '과수 구제역'으로도 불린다.

이씨 농가도 200그루 중 12그루가 양성으로 확인돼 과원 전체가 폐쇄 조치 됐다.
도 농정 당국은 확진 판정 이후 1주일가량 준비작업을 거쳐 이날 본격적인 매몰 작업에 들어갔다. 대형 굴착기 2대가 뿌리째 뽑힌 나무를 한데 모아 구덩이에 묻었고 방역 관계자들은 그 위로 석회 가루를 뿌렸다.

굴착기들이 여러 번 움직이자 과원은 금세 폐허로 변했다.

이씨는 올해 과일값이 좋을 것으로 기대하고 최근 어린 열매 솎아주기 작업까지 모두 마쳤다.

곧 내리쬘 여름 뙤약볕 아래 잘 자란 배를 수확할 기대에 부풀었지만, 과수화상병이 희망을 모두 가로챘다.

이씨는 "작년에는 이른 봄에 냉해를 입어 소득을 거의 올리지 못했었고 올해는 5천만원 이상 거둘 것이라 기대했었다"며 "이제 어떻게 보상받고 앞으로 뭘 심어야 할지 그저 막막할 뿐"이라고 말했다.

과수화상병은 지난 13일부터 27일까지 충북, 충남, 경기, 강원, 전북의 13개 시군 사과와 배 농가 51곳에서 발생해 30㏊의 과수원에서 피해가 났다.

농촌진흥청은 과수화상병 확산을 막고자 위기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높이고 차단 방역에 들어갔다.
강원농업기술원도 올해 49명 규모의 방제단을 운영하고 장비 및 약제 방제를 위해 20여억원을 지원했다.

또 과수원 1천620ha에 사전방제를 3차례 추진했고 농촌진흥청과 합동으로 감염위험도 예측 정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유택근 기술보급과장은 "과수화상병 차단을 위해 도·시군 대책상황실을 운영하고 있다"며 "농작업 중 잎·가지 마름 등 이상 증상이 보이면 가까운 농업기술센터나 병해충 신고 대표전화(☎ 1833-8572)로 꼭 연락해 달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