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 옆 '영화의 거리' 쿄바시, 일본 영화 100년사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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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국립영상자료원 르포 (上)도쿄는 5월에 가장 아름답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 되면 습도가 높아지고 우기가 시작되면서 도쿄의 봄이 주는 특유의 청량함과 화려함, 그리고 쾌적한 온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쿄의 거리를 걷기 가장 좋은 5월의 막바지에 나는 쿄바시에 위치한 일본 영상자료원을 방문했다.
자료원 내부에 위치한 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Japanese Cinema and Music: Composers in the 1950s and 1960s” (일본 영화와 1950년대, 60년대의 작곡가들) 전시를 보기 위함과 동시에 자료원의 곳곳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국립영상자료원 (National Film Archive of Japan)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산하기관으로 1970년에 긴자와 니혼바시 사이에 위치한 현재의 둥지, 쿄바시에 설립되었다. 한국 영상자료원과 파주 수장고가 그러하듯, 일본 역시 자료원 빌딩은 주로 전시와 상영, 도서관 운영을 맡고, 영화의 필름과 기타 다른 자료들은 사가미하라 (도쿄에서 차로 2시간)에 위치한 수장고에서 보관·관리 된다. 자료원은 2018년, 현대미술관으로부터 독립하여 현재는 문화청이 관리하는 독립기관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쿄바시는 전쟁 전부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닛카츠를 포함한 영화 스튜디오들이 위치한 동네였다 (한국의 충무로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본 영상자료원은 지하에 위치한 두 개의 상영관과 2층에 위치한 극장 오즈를 포함해 총 3개의 상영관과 3층의 영사실, 4층의 도서관, 그리고 7층의 갤러리 (박물관)로 구성되어 있다. 자료원의 팀장과 팀원인 카나코와 켄타 상의 안내를 받아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3층의 영사실이었다. 가장 놀랍고, 인상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다소 으스스한 (필름 상영이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라 저온으로 유지한다) 온도를 가진 이 공간에 촘촘히 쌓여 있는 필름 프린트들은 하나의 설치 미술처럼, 아름답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켄타 상이 뚜껑을 열어 보여준 프린트들은 놀랍게도 일본 영화의 거장, 미조구치 겐지와 오즈 야스지로 영화들의 프린트였다. 이 필름들에서 마치 1930년대의 공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영사실에서 바라본 2층의 상영관은 전통적인 근대의 극장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벨벳 커튼이 양쪽으로 걸려있는 스크린과 공연을 겸할 수 있는 무대, 그리고 300석가량의 좌석이 3개의 파트로 나뉘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이 공간에서 한국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의 변사 공연을 진행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한국 영상자료원과는 달리 일본의 영상자료원은 상영에 있어 일본의 고전 작품에 거의 매진하는 편이다. 가끔 유럽 영화와 남미 영화 등 외국 작품을 큐레이션할 때도 있지만 이 상영관들에서 보여지는 작품들의 70%는 자국의 고전 영화들이다. 내가 방문했던 시간에는 상영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관계자에 의하면 꽤 꾸준한 관객들이 자료원의 극장을 찾는다고 한다. 고전영화의 관객층이 어느 나라보다도 두꺼운 일본을 생각할 때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도쿄에는 아직도 고전영화 전용 상영관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4층의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는 많은 이용객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는데 학생들과 중장년층으로 이루어진 일반인이 혼재했다. 이 중에서 놀라웠던 것은 도서관의 수장고 (직원만 입장이 가능하다)에 보관된 영화잡지들이었다. 내가 발견한 것은 ‘映画の背景’ (영화의 배경)이라는 잡지였는데 1950년대와 60년대에 발간된 것들이 서재에 꽂혀 있었다.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인류의 첫 극영화가 1895년에 공개되고 얼마 되지 않은 이른 시기부터 자국 영화를 제작한 일본 영화산업에 있어 영화 관련 서적들 역시 오랜 역사를 갖는다. 자료원 도서관에는 다양한 종류의 영화잡지들과 평론지들, 그리고 영화 시나리오들이 빼곡히 서재를 채우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7층 대망의 전시장, “Japanese Cinema and Music: Composers in the 1950s and 1960s” (일본 영화와 1950년대, 60년대의 작곡가들)로 향하는 길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외국인과 유학생 방문객들이 많은 것도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사실 일본의 (영화)음악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로서, 이번 전시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이미 1950년대부터 일본의 영화 산업, 즉 영화제작에 있어 음악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었던 것이다. 특히 일본 만화 (극장용)에 등장하는 당대의 음악가, 그리고 영화음악가들의 스코어, 노래 등은 다른 차원의 예술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수려하고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下편에 계속] ▶▶▶ 전시장을 빼곡히 채운 자료들… "일본의 영화 열정이 이렇게 컸구나"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