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댈러스의 비결 '듀얼 코어 CPU'…잘하는 둘한테만 몰아 줘라

'돈치치 혼자 한다' 비판 딛고 챔프전으로…KBL서는 소노가 유사
13년 만에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미국프로농구(NBA) 댈러스 매버릭스의 농구는 '듀얼코어 프로세서 중앙처리장치'(CPU)로 정의된다. 컴퓨터에서 CPU가 핵심적인 연산 능력을 담당하는 것처럼 댈러스의 공격 전개에서는 볼 핸들러인 루카 돈치치가 가장 중요하다.

그는 몇 년간 공을 독점하며 사실상 홀로 댈러스의 경기 운영을 책임졌다.

이런 농구를 설명하려는 현지 평론가들은 '헬리오센트리즘'(Heliocentrism)이라는 용어를 자주 언급한다. 지동설이나 '태양 중심 모델'로 번역된다.

돈치치라는 태양을 중심에 두고 나머지가 궤도를 따라 뱅뱅 도는 행성처럼 꾸린 경기 모델을 뜻한다.

돈치치 중심 체제가 꾸려진 2019-2020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댈러스는 플레이오프(PO) 1회전에서 두 차례 떨어졌고, 2021-2022시즌에는 서부 콘퍼런스 결승까지 올랐으나 챔프전은 밟지 못했다. 돈치치라는 역대급 재능의 선수를 두고도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자 경기 모델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 사람에게 공격 비중이 많이 쏠린 팀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돈치치는 2020-2021시즌부터 세 시즌 동안 정규리그에서 공 소유 시간이 가장 길었다. 2021-2022시즌에는 전체 경기 시간 48분 가운데 무려 9분이 넘도록 홀로 공을 쥐었다.
48분 중 우리 편이 공을 잡는 시간은 절반가량이다.

여기서 리바운드, 슈팅 등 공이 흐르는 상황을 빼고 9분간 공을 잡는 건 NBA에서도 흔한 일이 아니다.

'몰방'의 한계가 보이니 돈치치의 경기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지적에 댈러스의 대답은 CPU를 하나 더 들여오는 방법이었다.

본래 돈치치와 원투펀치를 이뤘던 제일런 브런슨을 뉴욕 닉스로 떠나보낸 댈러스는 2022-2023시즌 도중 카이리 어빙을 영입했다.

어빙 역시 공을 쥔 상태에서 보여주는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로, 돈치치의 약점을 메워 줄 자원이 맞는지 의구심 섞인 시선이 뒤따랐다.

어빙 영입 첫 시즌 PO 진출에도 실패한 댈러스는 2023-2024시즌에도 기존 분업 농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더 강화하고 보완하는 선택을 했다.

지난 2월 트레이드 마감일에 워싱턴 위저즈에서 대니얼 개퍼드, 샬럿 호니츠에서 P.J 워싱턴을 영입했다.

208㎝의 개퍼드와 신장 201㎝에 팔이 길기로 유명한 워싱턴은 경기 운영이나 공격 전개에는 재능이 없다.

대신 높이 싸움에 능하고, 좋은 패스가 들어오면 받아먹는 득점이 많다.

돈치치-어빙으로 이어지는 가드진이 더욱 공격 전개와 경기 운영, 득점에 집중하도록 수비·리바운드 등 나머지 부분을 책임질 선수들을 데려온 것이다.

트레이드 이후 승률이 74.1%(20승 7패)까지 올랐고, PO 진출을 두고 경쟁하던 댈러스는 50승 32패로 5번 시드를 따냈다.

PO에서 만난 LA 클리퍼스(4위), 오클라호마시티 선더(1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3위) 모두 순위가 높지만 트레이드 이후 기간만 보면 댈러스보다 승률이 낮다.
올 시즌 PO에서 돈치치의 공 소유 시간은 다시 8분대로 내려왔다.

어빙이 5분 20초가량 공을 쥐며 공격 부담을 덜어준 덕이다.

돈치치의 체력이 떨어지거나 반복적 패턴에 수비가 적응할 때면 어빙이 나서서 경기 내내 흐름이 끊기지 않고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공격에 서부 상위 세 팀이 무너졌다.

특히 미네소타는 정규리그 최소 실점(106.5점)팀이지만 댈러스와 5경기에서는 평균 111.2점을 내주며 고전했다.

댈러스가 챔프전 상대 보스턴 셀틱스(정규리그 64승 18패·동부 1위)까지 넘으면 '몰방 농구'로도 우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기념비적인 사례가 된다.

한 명이 감당하기에 부담이 크다면 걸출한 선수 2명에게 이를 나눠주면 문제가 없다는 새로운 공식이 성립할지 주목된다.

농구에서는 팀 스포츠인 만큼 공을 여럿이 만지면서 공격을 전개하는 게 옳다는 통념이 있는데, 댈러스가 그 반례가 될 수 있을지가 챔프전의 관전 포인트다.

이전까지 댈러스와 흡사한 농구로 인상적 경기력을 낸 팀은 2017-2018시즌 휴스턴 로키츠였다.

이때 휴스턴 역시 돈치치처럼 압도적인 공격력을 뽐낸 제임스 하든과 크리스 폴을 묶어 듀얼코어 시스템을 꾸렸다.

65승 17패로 서부 1위를 차지한 휴스턴은 콘퍼런스 결승에서 우승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3승 4패로 무릎을 꿇었다.

당시 골든스테이트는 스테픈 커리가 버티는 선수단에 '득점 기계' 케빈 듀랜트가 시장 가격보다 몸값을 자발적으로 낮춰 합류한 역대 최고 전력 팀이었다.

이 팀에 3승 2패로 우위를 잡은 휴스턴은 갑자기 5차전 도중 시스템의 한 축인 폴이 부상으로 이탈하는 불운 끝에 고개를 숙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역 최고 가드로 성장한 이정현을 중심으로 꾸린 고양 소노의 경기가 댈러스와 유사하다고 평가된다.

이런 평가를 들어왔다는 김승기 감독은 선수 영입 등에 집중하느라 최근 댈러스의 PO 경기는 아직 못 봤다고 한다. 김 감독은 구단을 통해 "바쁜 일이 끝났으니 (댈러스 경기를) 몰아서 챙겨보려 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