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감정을 잃어가는데 Her의 사만다는 사랑을 알아가지

[arte] 김정민의 세상을 뒤집는 예술읽기
SF영화 < 그녀(Her) > (2013)
“문득 문득,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거의 다 느껴본 거 같아.
그래서 이젠 별다른 느낌 없이 그저 덤덤히 사는 거지.
그냥 이미 다 느껴봐서 시큰둥할 뿐."

마치 여러 번의 생을 살아본 것처럼 말하는 이 사람은 남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합니다. 그것도 아주 잘 써주죠. 친구면 친구처럼, 애인이면 애인처럼. 그래서일까요?

혼신의 힘을 다해 남의 감정을 대신 느끼고 전달하는 감정의 메신저 역할을 직업으로 살아서인지, 타인이 아닌 자신의 본모습으로 돌아온 그의 일상은 마치 감정의 씨가 다 말라버린 듯 무미건조하고 공허해 보입니다. 바로 영화 <그녀(Her)>의 주인공 테오도르의 이야기인데요.
영화 '그녀'의 한 장면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2013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도 'AI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란 소재 때문에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지만, 최근 생성형 AI, ChatGPT 4o 때문에 재조명받았습니다.

사랑이란 감정은 그 자체가 귀하기 때문에, 흔히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 합니다. 국경도 나이도, 인종도, 또 종교도 사랑을 막을 수는 없죠. 남녀 간의 사랑도 그렇지만 대상이 좀 더 확장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자식보다 반려동물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많고 유산을 상속하기도 하죠. 그렇다면 AI와 사랑에 빠진 남자는 어떨까요?
영화 '그녀'의 한 장면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다시, 편지 대필로 인한 감정 소모로 인해 일상을 무덤덤하게 살아가던 테오도르의 이야기로 돌아와 봅시다. 대필의 흔적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편지로 읽는 이에게 감동의 쓰나미를 경험케 하는 장본인 테오도르는, 정작 자신의 서툰 감정 때문에 사랑했던 아내 캐서린과 이혼 절차를 밟으며 매일 밤 이불킥으로 괴로워합니다. 일상은 무덤덤한데 이혼의 후폭풍은 상당해 보이죠.아이러니하게도 날마다 타인에게는 행복을 주는 일과와 무덤덤한 본인의 일상을 반복하던 어느 날, 만성적 불감증에 시달리던 테오도르의 오감을 활짝 열어젖히게 만들어버린 존재가 그의 앞에 딱! 나타납니다. 이름은 ‘사만다’. 정체는 바로 AI였습니다. 그리고 사만다는 인공지능 운영체계로 시작해 개인형 비서에서 친구로, 그리고 찐친이 되었다가 곧 여친으로 발전하게 되죠.

하지만, 일종의 기계에 불과한 AI가 어떻게 인간 테오도르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었을까요?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낼 뿐, 진짜 감정을 가진 존재도 아닌데 말이죠.
영화 '그녀'의 한 장면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최근 생성형 AI와 대화를 나눠보고 ‘신세계를 경험’했다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 사람 중에는 또 최근 몇 년 사이에 자신이 나눈 대화 중 가장 밀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노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기계와 말이죠. 사실은 대화를 나눈 것이 아니라, 인내심이 강한 AI는 무슨 말인 듯 잘 들어줄 테니 그 사람 혼자서만 떠든 것이라 의심해볼 수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그것이 대화가 아니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화는 혼자 하는 독백이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되니까요.

자신을 일방적으로 표현하고, 무언가를 주장하기에 바빠서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일이 부쩍 줄어든 요즘의 일상을 문득 생각해 봅니다. 내가 남의 이야기를 잘 못 들어주는 상황이라면, 마찬가지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운 상황이란 뜻이 될 겁니다.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요즘 같은 상황에 누군가(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무엇인가가)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성심성의껏(?) 맞장구쳐 준다면 얼마나 반가울까요? 아마도 비판보다는 지지와 응원의 비중이 더 높을 테니 말이죠.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나오는 모모처럼,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축복일 겁니다. 잘 들어주기, 즉 경청의 윤리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일수록 중요한 가치입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때 비로소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고, 그런 관계에서 비로소 공감과 신뢰가 생겨나겠죠. 감정은 바로 그렇게 싹이 트고 커져갈 테니까요.

AI는 남의 이야기를 심지어 끊지도 않고, 그저 열심히 들어주는 존재일 겁니다. 그러니 테오도르의 급격한 심경 변화도 짐작이 갑니다. 타인의 감정처리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던 테오도르였으니까요.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은 이렇게 ‘내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지지해주는 AI가 세상에 나와서 그 기능이 고도화된다면, 우리는 점점 더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일이 어려워지지는 않을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 자기 입장과 생각과 감정이 제각각이어서 자꾸 내 말에 토를 달고 지적질을 하고 공감하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AI는 그러지 않을 테니까요.
영화 '그녀'의 한 장면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자아의 빈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자아는 그 자신 안에 다른 것 혹은 차이를 품고 있을 때 풍부해진다고 말합니다. 마치 자연의 다양성이란 것이, 한 공간 안에 서로 이질적인 존재들이 모여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 유지되는 것처럼 말이죠.

내 말에 대해 일절 토 달지 않고 그저 잘한다 잘한다며 지지하고 잘 들어주는 AI와 대화 나누는 일에 빠져버리면, 정작 나의 자아는 역지사지(易地思之) 대신 동질적인 것들로만 채워지고, 타인과의 공감보다는 내 생각만을 강화하게 되어 결국 독불장군이 되거나 나의 자아와 정체성은 빈곤해지지나 않을까 염려됩니다.
영화 '그녀'의 한 장면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런 반면 영화 속 인공지능 사만다처럼, AI가 기계학습을 거듭해나가다 흔히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부르는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으로 발전하게 되면 오히려 AI는 감정이 풍부하면서도 섬세해지고 자아와 정체성이 풍성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행히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만남과 헤어짐이란 관계 속에서 그동안 자신의 서툰 감정과 사랑했던 아내와 헤어짐의 이유 등을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남을 위해 대신 써주는 편지가 아닌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이메일을 캐서린에게 보냅니다. 요즘은 타인 때문에 겪는 감정노동이 힘들어 교우관계도 또 연애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하는데요. 이런저런 귀찮음으로 인해 감정노동을 피하기만 한다면 사람은 점점 더 기계같이 감정이 무뎌지고 기계(인공지능)는 점점 더 사람처럼 감정이 풍부해지는 해괴한 미래를 앞당기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황당한 상상을 한번 해봅니다.
영화 '그녀'의 한 장면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김정민 나은미래플랫폼 주식회사 ESG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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