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류는 의례를 치르면서 불안을 이겨냈다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

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 지음
김미선 옮김 / 민음사
408쪽|2만원

심리학·뇌과학으로 본 의례
백일잔치부터 입학식, 결혼식
죽음을 맞이할 때도 의례 거쳐

위기 대비한 마음의 준비이자
공동체 정신을 강화하는 수단
"의례가 인류를 단단하게 지지"
의례는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평생을 따라다닌다. 태어난 지 100일이나 1년을 맞아 여는 잔치를 비롯해 입학식, 결혼식, 장례식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의례가 빠지지 않는다. 사소하게는 생일 파티에서 부는 초 끄기와 명절에 지내는 차례, 매주 종교 시설에 가서 일정한 절차에 따라 올리는 기도 등도 모두 의례다.

실험인류학자 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는 책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에서 세계 의례 현장에 뛰어들어 의례의 수수께끼를 파헤친 과정을 담았다. 지갈라타스는 최첨단 과학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인류가 의례를 갈망 혹은 집착하는 이유를 찾아나간다.
의례의 목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사람들은 정성을 들여 그 행위에 의미를 부여한다. 예컨대 기우제를 지낸다고 해서 꼭 비가 오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렇게 한다. 세계 곳곳의 많은 사회엔 갓 태어난 아기를 위험과 공포로부터 보호하려는 탄생 의례가 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의 거처보다 화려한 무덤을 짓는 장례 의례는 말할 것도 없다.

저자는 사회심리학과 뇌과학을 통해 의례의 기능적 효과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의례는 개인의 마음속에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뛰어난 운동선수가 경기 전 이른바 미신이라는 것에 의지하는 게 대표적이다. 저자는 의례가 인류에 스트레스와 위기에 대처하는 역량을 줌으로써 긴 역사 동안 살아남을 수 있게 했다고 주장한다.의례의 강력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의례는 직접 의례를 하는 실천자뿐 아니라 그를 지켜보고 동조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지갈라타스는 스페인 산페드로 마을, 인도양 모리셔스 섬 등에서 수행하는 ‘불 건너기 의식’에서 이런 접착 효과를 과학적으로 추적했다. 이 의례의 참가자는 소중한 사람을 업고 600도가 넘는 뜨거운 석탄 위를 걷는다. 화상은 물론 생명에 치명적일 수 있는 의식이 이뤄지는 동안 참가자와 마을 공동체 일원은 생리적으로 높은 동조 수치를 보인다. 이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높일 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하는 변화를 끌어낸다. 즉 의례는 단지 자극적인 행위로 사람들을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의례의 일부로 끌어들여 하나가 됐다는 감각을 낳는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생명력을 높인다는 설명이다.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대유행 사태 속에서도 사람들은 의례를 지켜나가고, 의례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야 할 때도 온라인으로 입학식과 졸업식을 열거나 인적이 없는 산꼭대기에서 결혼식을 하는 사람들, 처벌을 무릅쓰고 가족의 장례를 치른 이들이 있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례는 여전히 강력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존재를 불안정하게 하는 위기가 다시 찾아올 때, 의례가 인류를 단단하게 지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속 불가능한 성장, 기후위기와 정치적 불안이 나날이 커져가는 지금 의례의 재발견으로 인간 본성에 있는 연대의 힘을 슬기롭게 사용해 나가자고 강조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