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태원-노소영 이혼 판결이 던지는 의문과 질문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2심 판결이 그제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는 최 회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위자료로 20억원을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1심 법원의 재산분할 665억원, 위자료 1억원 판결에 비해 20배가량 뛴 액수다. 이혼 귀책사유가 명백히 최 회장에게 있는 만큼 재산분할액과 위자료가 통상적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은 있었지만, 2심 재판부가 제시한 사실 판단과 법 논리에는 몇 가지 의문이 뒤따른다.

(1) 기업인 재산분할의 적정성먼저 재산 형성에서 노 관장의 기여 부분이다. 1심은 최 회장의 재산 대부분을 차지하는 SK 주식을 ‘특유재산(特有財産)’으로 보고 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노 관장과 관계없이 상속과 혼인 후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2심은 이 주식 모두 분할 대상에 포함해 노 관장의 기여를 인정했다. 보통 부부의 이혼 소송에서는 결혼 후 형성한 재산에 대해 절반까지 인정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고도의 전문적 판단과 경영 활동을 통해 늘린 기업 지분에 대해서까지 재판부의 표현대로 ‘가사와 자녀 양육을 전담’한 배우자에게 35%의 기여도를 인정해야 하는지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상 공동 창업한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와 매켄지 스콧 사례와 같은 잣대를 대기는 어렵다.

(2) 정경유착 산물로 '낙인' 찍은 기업 성장

다음 문제는 정경유착이나 비자금을 재산 형성의 기여로 든 부분이다.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현 전 SK 회장의 보호막이나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SK그룹의) 성공적 경영 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그동안 항간에 이런 의혹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재판부가 명확한 증거 없이 편견에 기반해 판단한 측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SK의 전신인 선경그룹은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절 제2 이동통신 사업자에 선정됐지만 특혜 시비가 일자 1주일 만에 사업권을 반납했다. 김영삼 대통령 때도 사업자 선정 참여를 사양하고 대신 막대한 인수자금이 들어가는 한국이동통신 공개 입찰에 들어가 통신사업을 시작했다. 통신사업만 놓고 보면 대통령 사돈 기업이라고 특혜를 본 게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봤다는 SK 측 주장도 일리가 없지 않다. 재판부는 태평양증권 인수나 이동통신사업 진출을 놓고 “이런 지극히 모험적이고도 위험한 행위를 한 배경에는 노 전 대통령이 있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기업의 M&A나 신사업 도전을 특혜가 없으면 엄두도 못 낼 ‘무모한 행위’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3) 권력자 불법자금 수익을 자식에게 주라는 꼴

노 관장 측이 2심에서 처음 들고나온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을 인정한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SK로 유입된 비자금 300억원이 기업 성장의 ‘종잣돈’ 역할을 했다는 것인데 이 역시 수사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SK라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중요한 소송인데 일방의 메모와 어음만으로 단정 지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설혹 비자금이 사실이라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남는다. 대통령이 대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1997년 대법원에서 유죄를 받고 2628억원이 추징됐는데 미처 추징 못 한 비자금이 있다면 그 또한 불법 자금일 뿐이다.

재판부는 “1991년도 기준으로 볼 때 300억원이 (분할 대상에 포함할 수 없을 만큼의) 불법적인 돈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했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판단이다. 이미 추징한 비자금과 SK에 들어갔다고 주장하는 비자금은 전혀 성격이 다른 돈이란 말인가. 정경유착과 비자금 덕에 불렸다는 재산을 범죄적 행위 당사자의 자녀에게 ‘기여분’으로 인정한 것도 일반 상식에 비춰봤을 때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 비자금으로 불린 기업 재산을 그의 딸에게 주라는 꼴이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의문이 남는 2심 판결이다. 최 회장 측이 상고할 방침이라고 한 만큼 대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