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금개혁, 100년을 내다보자

골든타임 놓치면 후대 '빚 폭탄'
연금의 지속 가능성에 목적 둬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맹자가 왕에게 물었다. “화살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한 병사가 겁을 먹고 한 50보쯤 도망치다가 문득 앞을 보니 100보쯤 도망친 병사가 보였습니다. 그러자 50보 도망간 병사가 100보 도망간 병사를 보고 ‘이런 비겁한 놈’이라며 비웃었습니다. 왕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왕이 왜 싱거운 것을 묻느냐는 듯 답했다. “50보나 100보나.”

21대 국회에서 여야의 연금개혁 논의가 바로 ‘50보, 100보’다. 소득대체율을 43%나 45%로 올려서는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더라도 연금 소진 시점이 7~8년 늦춰질 뿐이고 막대한 빚이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진다. 지금도 2023년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80.1%인 1825조원이다.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여야의 중간값)로 바꾸더라도 미적립 부채는 2050년 6366조원(GDP의 123.2%), 2093년 4경250조원(GDP의 313.3%)에 달하게 된다.이것이 어떻게 개혁이 될 수 있는가. 지난 국회 막판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금개혁 타결을 여당에 제안했지만, 이 안은 본인과 진영의 정치적 입지만을 위한 ‘개악’일 뿐이다.

이 대표가 제안한 연금개혁의 주된 명분과 논리는 ‘노인 빈곤 해소를 위해 소득대체율을 모든 국민에게 일률적으로 높이자’인데, 이는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 현상만 심화시킨다. 고소득 계층이 돈을 더 가져가고, 빈곤 계층을 돕는 효과는 크지 않아서다. 노인 빈곤 해결에는 ‘취약 노령층에 집중해 더 많은 기초연금을 세금에서 지급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정책 권고가 훨씬 더 합당하다.

연금개혁의 목적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어야 한다. 즉, ‘부모가 자식들에게 빚 폭탄을 떠넘기지 말자’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은 100만 명이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연금을 지금의 2030세대와 연 20만 명 이하로 태어나는 미래 세대가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결국 2030세대와 미래 세대가 ‘빚 폭탄’을 떠안을 것이다.더 이상 주저할 시간이 없다. 지난 국회 연금개혁특위에서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개혁안이 모두 틀렸다고 누차 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가장 좋은 연금개혁 모델은 스웨덴의 확정기여(DC·낼 보험료는 정해져 있지만 받을 연금액은 유동적) 방식이다. 스웨덴은 정해진 보험료에다 경제성장률에 따라 변동되는 실제 이자를 더한 금액을 연금으로 지급하기 때문에, 연금액은 이자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재정 안정 측면에서는 가장 낫다.

다만 우리는 확정급여(DB·받을 연금액이 정해져 있음) 방식이기 때문에 핀란드처럼 DB 방식이면서도 자동 안전장치인 기대여명계수를 적용하는 중간 과정을 거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에 최종적으로 스웨덴 방식으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이제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연금개혁의 목적부터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연금개혁의 목적이 ‘지속 가능성’인지 아니면 ‘노후 소득보장 강화’인지에 따라서 논의 과정과 결론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목적은 지속 가능성에 둬야 한다. 목적을 노후 소득보장에 두면 현재 연금 구조상 기성세대가 더 많이 받기 위해 진 빚을 2030세대가 갚을 수밖에 없어 세대 간 공정성이 훼손된다.

국민은 ‘왕’이다. 국민에게 우리 정치인들의 행보가 ‘50보, 100보’가 되면 안 된다. 연금개혁, ‘50보, 100보’가 아니라 100년을 내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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