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전문'이던 대만, 정부 주도 육성책에 '반도체 챔피언' 됐다

대만은 불과 20년 전만 해도 ‘최첨단 반도체 강국’이란 수식어와 거리가 멀었다.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워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담당하는 ‘하청 전문’ 국가 중 하나였다.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을 고민하던 대만은 자국 기업의 주특기인 ‘생산 능력’을 고도화하는 데 승부수를 던졌다. 미국 등 선진국 반도체 기업들이 ‘설계’에만 주력하고, 산업 특성상 설비 투자 부담이 크다는 점에 착안해 수탁생산과 후공정·테스트(칩을 전자기기에 부착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를 전담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든 것.그렇게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TSMC를 시작으로 3위 UMC가 탄생했다. 후공정 중 첨단 분야인 패키징(여러 칩을 묶어 한 칩처럼 작동하게 하는 것)의 글로벌 1위 ASE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대만이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난 것은 정부 주도의 전폭적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 TSMC도 1987년 정부 주도로 추진한 민영화의 결과물이다. 대만 정부는 차별화한 생산 경쟁력을 토대로 2020년대 들어 반도체 주도 성장전략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경쟁이 심해지자 TSMC를 중심으로 경제 및 안보 강화에 나선 것.

지난해엔 연구개발(R&D) 투자와 첨단 공정용 설비투자를 한 기업에 법인세 감면 혜택을 주는 ‘대만판 칩스법’도 제정했다. TSMC는 이 법을 통해 연간 1조원 넘는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최근 임기를 시작한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대만을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의 섬’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공개했다. 라이 총통은 취임식에서 “대만 기업들이 반도체, AI 등 5대 핵심 산업에서 기회를 찾고, 해외로 나간 기업들이 대만에 돌아오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타오위안·신주·먀오리 지역을 실리콘밸리 못지않은 첨단 산업 중심지로 키우기 위해 20조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했다. 공사 착공은 올해 시작된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