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의 사법부 비난 유감 [민철기의 개똥法학]
입력
수정
의대 증원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다. 최근 서울고법은 의대 증원의 집행을 정지해 달라는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등의 신청을 기각 또는 각하하였다. 그러나 서울고법의 이번 결정에 대해 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거나 의대 증원의 정당성을 인정했다고 이해한다면, 이는 집행정지 사건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것이다.
행정처분이 위법이라는 이유로 취소소송이 제기되더라도 그 처분의 효력 등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행정소송법은 일정한 요건 아래에 처분의 집행정지를 허용하고 있다.
행정처분의 적법 여부는 본안재판에서 충분한 심리를 거쳐 판단되어야 한다.따라서 집행정지 사건에서는 ‘신청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긴급한 필요가 있을 것’과 ‘집행정지를 하더라도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을 것’이라는 요건이 충족되는지를 심리할 뿐 행정처분의 적법 여부는 원칙적으로 심리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집행정지 사건에서도 신청인의 본안청구가 소송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본안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하지는 않아야 한다.
이를 법원의 판단에 적용해보자. 의대 교육의 관점에서 의대 증원으로 인해 의대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적어도 의대생들은 ‘신청인적격’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 서울고법은 의대 증원으로 인해 의대생들의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고 이들이 본안에서 패소할 것이 명백하지는 않지만, 의대 증원의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 개혁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이유로 의대생들의 신청은 기각됐고, 나머지 신청인들의 신청은 신청인적격을 갖추지 못했기에 각하된 것이다.
서울고법의 결정에 대하여 신청인들이 재항고했지만 대법원에서 결론이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다. 대법원은 집행정지의 요건이 충족되었는지를 다시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급심의 판단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지, 기존의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는지 여부만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의대 증원의 취소를 구하는 본안소송에서도 법원은 해당 처분에 무효 내지 취소사유에 해당하는 절차척·실체적 하자가 있는지를 심리할 뿐 그 처분이 정책적으로 타당한지,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에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등은 심리의 대상이 아니다. 이는 로스쿨 정원이나 변호사 합격자 수, 수의학과나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을 늘리는 처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료계와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관련 법령에서 필수적인 절차로 규정하지 않는 한 의료계와의 협의는 정책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증원을 원만하게 추진하기 위한 과정일 뿐 처분의 절차적·실체적 하자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그런데 의대 증원과 관련한 의료계의 주장은 대체로 정책 판단의 당부를 다투거나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취지여서 기본적으로 사법심사에 친하지 않다. 즉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 개혁은 정부가 ‘정치적·정책적’ 책임을 지는 영역이지 처분의 상대방(의대를 보유하고 있는 대학의 총장)도 아닌 의료계가 법률상의 이익을 주장하며 사법심사를 구하기에 적절한 영역이 아닌 것이다.
서울고법 결정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대한의사협회장이 결정 직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번 결정을 한 재판장에게 대법관직에 대한 회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그래서 매우 부적절하다.만약 집행정지가 받아들여졌다면 의료계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나라를 구한 결정이라고 재판장을 칭송했을 것인가? 재항고가 기각되면 이제는 대법관을 비난할 것인가? 이런 식이라면 각종 고소·고발과 소 제기를 통해 정치적인 사건을 사법기관에 던져놓고 각자의 유불리에 따라 해당 재판장에 대한 칭송과 비난을 일삼는 정치권의 행태와 다를 것이 없다. 의료계의 주장이 제 밥그릇 지키기가 아니라 정말로 국민건강을 위한 것이라면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우선이고, 국민들을 설득하려면 최소한의 매너는 지켜야 한다.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 6월 3일자에 게재된 ‘사법부의 의대 증원 판단, 제대로 읽는 법’ 칼럼 전문입니다.
행정처분이 위법이라는 이유로 취소소송이 제기되더라도 그 처분의 효력 등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행정소송법은 일정한 요건 아래에 처분의 집행정지를 허용하고 있다.
행정처분의 적법 여부는 본안재판에서 충분한 심리를 거쳐 판단되어야 한다.따라서 집행정지 사건에서는 ‘신청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긴급한 필요가 있을 것’과 ‘집행정지를 하더라도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을 것’이라는 요건이 충족되는지를 심리할 뿐 행정처분의 적법 여부는 원칙적으로 심리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집행정지 사건에서도 신청인의 본안청구가 소송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본안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하지는 않아야 한다.
이를 법원의 판단에 적용해보자. 의대 교육의 관점에서 의대 증원으로 인해 의대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적어도 의대생들은 ‘신청인적격’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 서울고법은 의대 증원으로 인해 의대생들의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고 이들이 본안에서 패소할 것이 명백하지는 않지만, 의대 증원의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 개혁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이유로 의대생들의 신청은 기각됐고, 나머지 신청인들의 신청은 신청인적격을 갖추지 못했기에 각하된 것이다.
서울고법의 결정에 대하여 신청인들이 재항고했지만 대법원에서 결론이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다. 대법원은 집행정지의 요건이 충족되었는지를 다시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급심의 판단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지, 기존의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는지 여부만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의대 증원의 취소를 구하는 본안소송에서도 법원은 해당 처분에 무효 내지 취소사유에 해당하는 절차척·실체적 하자가 있는지를 심리할 뿐 그 처분이 정책적으로 타당한지,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에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등은 심리의 대상이 아니다. 이는 로스쿨 정원이나 변호사 합격자 수, 수의학과나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을 늘리는 처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료계와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관련 법령에서 필수적인 절차로 규정하지 않는 한 의료계와의 협의는 정책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증원을 원만하게 추진하기 위한 과정일 뿐 처분의 절차적·실체적 하자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그런데 의대 증원과 관련한 의료계의 주장은 대체로 정책 판단의 당부를 다투거나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취지여서 기본적으로 사법심사에 친하지 않다. 즉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 개혁은 정부가 ‘정치적·정책적’ 책임을 지는 영역이지 처분의 상대방(의대를 보유하고 있는 대학의 총장)도 아닌 의료계가 법률상의 이익을 주장하며 사법심사를 구하기에 적절한 영역이 아닌 것이다.
서울고법 결정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대한의사협회장이 결정 직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번 결정을 한 재판장에게 대법관직에 대한 회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그래서 매우 부적절하다.만약 집행정지가 받아들여졌다면 의료계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나라를 구한 결정이라고 재판장을 칭송했을 것인가? 재항고가 기각되면 이제는 대법관을 비난할 것인가? 이런 식이라면 각종 고소·고발과 소 제기를 통해 정치적인 사건을 사법기관에 던져놓고 각자의 유불리에 따라 해당 재판장에 대한 칭송과 비난을 일삼는 정치권의 행태와 다를 것이 없다. 의료계의 주장이 제 밥그릇 지키기가 아니라 정말로 국민건강을 위한 것이라면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우선이고, 국민들을 설득하려면 최소한의 매너는 지켜야 한다.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 6월 3일자에 게재된 ‘사법부의 의대 증원 판단, 제대로 읽는 법’ 칼럼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