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감 쏟아진 밸류업 계획, 향후 해결 과제는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된 가운데 중장기 관점에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인센티브와 더불어 이사회의 역할 및 책임을 강화하는 거버넌스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순탄한 행보를 이어갈지 관심이 쏠린다.
[한경ESG] 이슈
5월 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 2차 세미나’에서 김소영 금융위원 회 부위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기업들의 올 상반기 최대 화두는 단연 ‘밸류업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가이드라인 초안부터 실효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올 초 외국인이 대규모 자금을 사들이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지만, 지난 5월 2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 가이드라인(초안) 핵심 키워드에는 자율성에 방점이 찍히면서 기대에 못 미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기업은 각자 핵심지표를 선정해 중장기 목표를 수립하고 사업 부문별 투자와 연구개발(R&D) 확대, 사업 포트폴리오 개편, 자사주 소각·배당, 비효율적 자산 처분 등 구체적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밖에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시장 내 견제 장치를 통한 실질적 동참을 유도한다는 것이 밸류업 공시 가이드라인의 주요 골자다. 올 하반기에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공이 입법부로 넘어간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법안 통과가 이뤄져야 정책적 탄력이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전문가들은 강제성이 빠진 밸류업 공시 가이드라인이 효과를 거둘지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지난 5월 28일엔 키움증권이 밸류업 1호 공시를 하며 주주환원 정책을 펴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키움증권은 공시에서 3년간 자기자본이익률(ROE) 15%, 주주환원율 30% 이상을 3년 내 달성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이미 시장에 예고된 사항이었다. 금융당국에 대한 눈치를 보느라 키움증권이 성급하게 1호 공시를 내놓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KB금융도 밸류업 관련 구체적인 내용은 4분기에 발표한다는 안내 공시에 그치며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밸류업 프로그램, 중장기 관점 추진 필요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 전반의 지배구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의 저평가 원인으로 주주환원과 기업 수익성 둔화, 미흡한 기업지배구조를 지목한다.

최근 한국 밸류업 프로그램의 바로미터로 작용하는 일본 상장기업의 거버넌스 개혁은 지난 10년에 걸쳐 진행됐다. 지난 2014년 이토 구니오 교수는 일본 기업의 지속가능 성장을 위해 ▲ROE 향상 ▲자본 효율성 제고 ▲기업지배구조 개선 ▲주주와의 소통 강화 ▲경영진과 임직원 인센티브 구조 개선을 제시했다.

이러한 이토 연구를 계기로 스튜어드십 코드와 기업지배구조 코드가 본격적으로 마련됐고, 지난 2018년 도쿄증권거래소가 발표한 개정된 증권 상장 규정(Securities Listing Regulations, SLR)이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2018년 도쿄증권거래소(Tokyo Stock Exchange, TSE)의 SLR은 효과적 기업지배구조를 위한 기본 원칙을 수립해 공표했는데, 이는 주주와 기업 고객, 직원들을 위한 투명하면서 공정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를 지향한다. 특히 TSE 상장 주식회사는 2인 이상의 사외이사를 선임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이후 일본의 기업지배구조 관련 법령은 많은 변화를 거쳐 개선됐다. 지난 2021년에는 TSE가 또 한 차례 기업지배구조 관련 조항을 개정했다.

변정규 미즈호은행 서울지점 그룹장(전무)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가장 큰 밸류업 프로그램 차이는 정책보다는 기업들의 오너십이 다르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한국은 오너 일가가 경영에 깊이 관여하는 데 반해, 일본은 경영과 소유가 분리되어 있기에 밸류업 프로그램 운용 방식 자체가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자본시장 개혁을 타산지석 삼아 밸류업 프로그램을 중장기 관점에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인센티브를 제시하고,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이 일치하며, 이사회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는 거버넌스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자본시장의 중장기 발전을 위해선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함께 이사회 및 경영진 책임을 강화하고 세제 개선과 연기금의 역할 제고, 스타트업 육성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향후 시나리오는

밸류업 프로그램 가동을 위한 정부의 향후 추진 방향으로 세제 개편안이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 7월에 포함될 세제 개편은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같은 주주환원 시 세제 혜택을 비롯해 상속세 인하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및 유예, ISA 제도 개선 등인데 이 중 어떤 것이 포함될지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정부에서 관심을 갖는 부분은 자사주 소각 시 법인세 혜택과 배당소득 분리과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및 유예 등이다.

상법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도 관심사다. 전자주주총회 도입 등 상법개정안이 지난 21대 국회에서 추진됐지만, 아직 통과되지 못한 상태다. 상법개정안에는 전자주주총회 도입, 물적분할 반대주주 보호 강화, 최대주주의 상속세 할증 폐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시키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무엇보다 공매도 재개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장기 관점에서 밸류업 프로그램을 완성하려면 MSCI 선진지수에 편입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MSCI에 편입되려면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공매도 재개가 꼽힌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 향후 정책 추진이 실제 가능할 것인지를 고려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에서 직접 조치가 가능한 정책은 좀비기업 퇴출 요건 완화 방안과 공매도 재개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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