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업체 대리·과장이 하청업체의 사용자라고요?

한경 CHO Insight
김동욱 변호사의 '노동법 인사이드'
대법원은 2010.3.25. 선고 2007두8881 판결에서 원청업체를 하청업체 노동조합에 대한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 인정한 예가 있다. 원청업체가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라면 하청업체 노동조합에 대한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서 '사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판결은 부당노동행위 주체로서 사용자성에 관한 판결이었고, 노동위원회를 통한 원상회복 절차에 대한 판결이었다.

해당 판결 선고 이후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조합에 대해 교섭상대방으로서 사용자가 될 수 있는지, 원청업체가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에서도 하청업체 노동조합의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다. 전자에 비해 후자의 쟁점은 상대적으로 논쟁이 치열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대법원은 2021. 2. 4, 선고 2020도11559 판결을 통해 원청업체 임직원들이 하청업체 노동조합에 대한 사용자로서 부당노동행위 형사책임도 부담한다고 판결하였다. 사용자로서 책임을 묻는 근거는 2007두8881판결의 판시요건과 동일하였다.그러나, 2007두8881 판결의 법리가 원청업체를 부당노동행위 주체로서 형사처벌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먼저2007두8881 판결은 원상회복에 관한 판결이다. 원상회복 단계에서는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였다면 그에 따라 민사적으로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권한이 있다고 하여 형사적으로 당연히 책임을 부담하여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2007두8881 판결은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사용자라고 하는데, 그 개념의 불명확성·포괄성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법리를 형사처벌에도 적용하는 경우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될 가능성이 높다. 형사처벌에 있어서는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상 범죄의 주체인 사용자 개념이 명확하게 획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근로계약관계라는 객관적 표지를 근거로 신분을 판단하여야 하며, 근로관계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력 내지 지배력이라는 모호한 기준에 의해 처벌 대상이 확정되는 것은 형사법의 대원칙에 반한다고 본다.

2007두8881 판결은 일본의 아사히방송 사건에 대한 최고재판소 1995. 2. 28. 판결의 법리를 원용한 것인데, 일본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일본에서 유사한 법리가 있는 경우 이를 노동위원회를 통한 원상회복 절차에 도입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형사처벌에까지 해당 법리가 당연히 적용된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무리하게 원청업체를 사용자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의 부당노동행위에 가담한 경우에는 신분자의 범죄에 가담한 비신분자로서 공동정범 등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형법 제33조). 따라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의 공백은 발생하지 않는다.해당 판결은 부당노동행위 형사사건에서 원청업체 임직원을 하청업체 노동조합에 대한 사용자로 인정하는 근거는 더더욱 될 수 없다. 2007두8881 판결은 사업주에 대한 판결이다. 따라서 사업주가 아닌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에게도 당연히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고, 제한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특히 해당 판결이 말하는 사용자성 인정표시가 불명확한 개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사업주로서 원청업체는 경제적인 우위성을 통해 하청업체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그러한 영향력이 확대되면 하청업체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하청업체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다고까지 평가될 수 있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원청업체의 임직원은 그러한 위치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2007두8881 판결은 원청업체가 기업조직으로서 가지는 경제적 우위성을 기초로 원청업체의 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성에 대해 인정한 판결이지, 그러한 원청업체의 임직원까지 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한 하청업체의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범죄의 성립에는 주관적 구성요건 요소인 고의가 필요한데, 고의는 객관적 구성요건 요소에 대한 인식과 의욕을 의미한다. 신분범인 범죄에 있어 신분의 존재 여부는 객관적 구성요건 요소이다. 따라서, 원청업체 임직원이 사용자로서 처벌을 받으려면 임직원이 자신이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어 사용자라고 인식하여야 하는데, 그러한 경우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러한 지위를 인식하지 못한 경우라면 고의가 없는 것이므로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형사실무상 검찰이나 법원이 고의를 부정하여 불기소하거나 무죄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원청업체 임직원을 하청업체 조합원에 대한 사용자로 인정하여 처벌하는 것은 인식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 고의를 근거로 가벌성을 확대하는 해석이라 할 것이므로 채택할 바가 못된다.

만약 2007두8881 판결의 법리가 형사사건에서 원청업체뿐만 아니라 그 임직원들에게까지 확대적용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원청업체 임직원들에게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원청업체가 아니라 원청업체 임직원들 개개인이 하청업체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지가 엄격하게 심리되어야 한다. 대상판결에서는 원청업체의 모회사의 인사부문에 소속되어 과장, 대리급 직원에게 하청업체에 대한 사용자성을 인정하여 처벌하였는데, 대부분의 회사에서 하청업체와의 계약조건 등은 구매부문에서 결정이 된다는 점에서 인사부문 소속, 그것도 과장, 대리급의 하위직원들이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 극히 의문이다. 자신이 소속된 업체가 하청업체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원청업체 임직원들도 당연히 형사책임의 주체인 사용자라고 판단하는 것은 형사법의 대원칙인 책임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노동그룹장/중대재해대응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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